감자 대신 엄지 손가락을 썰다
막 결혼한 따끈따끈한 신혼초 때 일이다.
홈쇼핑에서 어떤 식자재든 척! 척!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만능 고성능 곰돌* 채칼을 단돈 39,990원에 판매한는 광고에 매료되어 바로 구매하였다.
전혀 관심도 재능도 없으며 자취할 때도 하지 않았던 요리를 하려는 것은,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알콩달콩 함께 요리를 만들며 맛있게 음식을 나눠먹는 달콤한 신혼의 모습이 로망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한가로운 토요일 저녁. 맥주를 마시며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하고 남편은 맥주를 사러 가고 나는 바삭하고 맛있는 감자칩을 만들어 준다며 요리를 시작했다.
(굳이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샤랄라 레이스 앞치마를 두르고 사랑스럽고 여성스러운(혼자만 느끼는) 새댁 코스프레를 하였다.
뽀얗게 씻은 감자를 홈쇼핑에서 산 번뜩거리는 채칼위에 올려 놓고 밀기 시작했다.
감자가 1/3 남았을 때 감자를 쥐었던 엄지 손가락이 감자보다 채칼에 더 가까이 있었나 보다. 나는 설명서 따위를 읽지 않는 심한 직관주의자로 식자재에 꽂는 채칼용 손잡이가 있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이윽고 엄지손가락은 손톱의 1/3 정도 살점과 함께 떨어져 나가 채통은 피바다가 되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아픔보다 쏟아지는 피 양에 더 놀란 것 같다
집에 돌아온 남편도 잘린 엄지손가락을 보고 나보다 더 놀란 것 같다. 얼굴 닦는 수건으로 감싸도 쏟아지는 피의 양이 엄청났다
엄지에 수건을 돌돌 말아 위로 쳐들고(심장보다 위에 있어야 출혈이 덜 하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왕따봉' 자세로 택시를 잡아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가 말했다
" 바로 봉합해야 하는데 잘린 손가락은 어디 있어요?'
라고 물었고 나는 바보같이 대답했다.
'다시 자라지 않나요'
의사가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이 상태로 아물면 둥근 손가락이 아니라 세모 모양으로 뾰족한 손가락이 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남편이 '손가락이 무슨 도마뱀 꼬리냐! 다시 자라게'라고 책망했고, 나는 그럼 왜 잘린 손가락을 가져오지 않았냐고 남편을 책망했다
둘 다 당황하고 경황이 없어 그냥 바보가 된 것 같다. 사람은 너무 당황하면 뇌의 가동이 일시정지 되나 보다. 남편은 서둘러 다시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손가락을 가져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피에 물든 채 썬 감자들 사이를 비집고 손톱이 붙어있는 손가락 살점을 집어 올 때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의사는 잘린 살점을 받아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려놓으면 엄지 손가락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살점들을 바느질을 했고 나는 그 장면이 끔찍해 눈을 질끈 감았다. 손에 마취를 해서 감각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점들을 바느질하는 젊은 의사가 신기해서 물었다.
"징그럽지도 끔찍하지도 않으세요."
의사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 손도 아닌데요 뭘"
웃지않는 나를 보고 겸연쩍었는지 의사가 다시 대답했다.
"이런 거 못 보면 외과 의사 못해요. 의사도 체질에 맞아야 해요."
은근히 자신이 천부적으로 선천적인 의사임을 자부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엄지손가락에 진공상태의 비닐 풍선 같은 것을 씌웠고 5일간 입원을 하였다. (나는 너무 답답해 도중 3일 만에 퇴원해 버렸다)
회사와 양가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걱정보다는 어떻게 요리하다 손가락을 자를 수 있냐고 어이없이 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내 엄지손가락 위쪽은 약간 색깔이 다르다. 그리고 무척이나 딱딱하고 굳은살 같다. 그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아무도 나에게 요리를 권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시부모님이 오신다기에 맛있는 요리 해 대접하려고 하면 '절대 하지 말라'라고 하신다. 남편도 내가 요리를 하려고 칼을 들면 달려와 자기가 재료를 다듬는다고 나선다.
의도치 않게 편해졌다. 아무도 내 요리를 기대하지 않아서(사실 맛도 그다지 없다), 요리를 해달라고 하지도 않아서 이상하고 씁쓸하게 편해졌다.
엄지손가락을 잃었었지만 나는 자유로워졌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 없다는 것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잘해 보겠다는 나의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배려받고 있음에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