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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Feb 14. 2022

출근준비하는 꿈을 꾸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나는 남미로 여행을 간다. 꿈에 그리던 스페인이다. 길거리 남성들이 '셰료리따~ 보니따~!"를 외치며 따라온다. 나는 수줍은 듯 과감하게 플라멩고를  추며 야릇한 미소를 그들에게 흘려 보낸다. 그때 갑자기 광장에서 삐리리리~! 싸이렌이 울리고 놀란 나는 다리가 꺽여 추잡하게 앞으로 꼬꾸라진다.


아침을 깨우는 알람이다. 

한창 꿈 좋았는데 자도 자도 무겁고 찌뿌등한 몸을 일으켜 알람을 끄고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 전투라도 나갈 기세와 힘을 모아 두발로 이불을 박찬다.


일단 머리부터 감고 세수와 양치질을 한다. 씻고나니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시간을 보니 아직 여유가 있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려는데 어라! 다리가 없다. 앞으로 나가지를 앉는다. 밑을 내려다 보니 내 다리가 누워있다. 


꿈이다. 출근준비하는 꿈. 허탈하다. 이불밖은 위험하다는 말을 무릅쓰고 박찬 이불이 아직도 내 배위를 포귾히 감싸고 있다. 내이불의 무게는 천근만근 무겁다. 출근 준비 힘들게 다했는데 이게모야. 다시 해야한다. 허망하다. 세상을 잃은 기분이 이런 것일까. 

모래성을 쌓았는데 파도가 훔쳐간 기분이 이런 것인다. 

짜증과 신경질을 내며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젖먹던 힘을 모아 이불을 다시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옷을 입었는데 감촉이 보슬보슬한 짱구 수면옷이다.  또 다시 꿈이다. 다시 또 허망하고 허탈하다. 출근 준비를 무한 반복하는 악몽인가.


꿈은 욕상의 절정체를 반영한다고 하더니 출근준비를 끝내고 싶은 욕망이 꿈이 되어 무한반복된다.  돌을 옮기고 나니 다시 돌이 생기는 시시포스가 이런 기분일까.

AC! 간단히 알파벳을 중얼거리며 시계를 보니 지각각이다. 


머리감기와 화장은 무리다. 앞머리에 드라이 샴푸를 뿌리고 드라이기로 살짝 말려 일시적이나마 뽀송뽀송하게 한 후 롤을 말아둔다 급할 땐 앞머리만 심폐소생술 하면된다. 양치질도 무리다 가볍게 가글을 한다. 스킨로션을 손바닥에 한번에 붓고 짝짝 두번 두들긴다. 


눈에 보이는 옷을 집히는대로 입는다. 주로 어제 벗어놓은 바지. 티는 어제 입은 것만 빼고 보이는 것을 입는다. 화장대 위 잘보이는 곳에 언제든 나와 함께 나갈 준비되어 있는 휴대용 화장품 파우치를 들고 냅다 달린다.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 총 7분. 날이 갈수록 신기록 갱신이다


주차장까지 왔다. 다행이다. 지각은 면했다. 이젠 화장이 문제다. 운전을 하다 신호가 걸릴때마다 기어를 파킹에 놓고 파운데이션을 신중하게 꼼꼼히 바르기 시작한다. 신호대기 40초안에 파운데이션을 꼼꼼히 발라야 하기에 익숙하고 빠른 손놀림은 순간이동 급이다. 그리고 다음 신호에 눈썹을 그린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신호가 안걸린다. 한쪽 눈썹이 없는 채로 회사에 도착한다. 


내자리에 가방을 잘 보이게 던져 놓음으로서 '나 출근했음. 지각아님'을 알리고 파우치를 들고 화장실로 직행한다. 최대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만나면 바로 고개 푹 숙여 인사하고 지나가야한다. 


도착 후 처음만난 사람은 후배다. 나의 상황을 잘 아는 후배는 보자마자 알아차린다.

"선배님, 오늘 신호대기가 안걸렸나봐요" 

"엉, 내가 출근준비를 반복하는 악몽만 안꿨어도"

"어! 저도 예요"


그렇구나, 직장인들은 다 출근준비 악몽을 꾸고 시작하는 구나. 직장인으로서 가장 힘든 점은 어찌되었든 이 무거운 한 몸을 매일 아침 1년 동안 이 상자갑 같은 사무실로 옮겨 놔야 한다는 사실 아닐까. 


학교 다닐땐 한번도 결석 안하면 개근상을 줬고 1번의 결석이나 지각은 정근상을 주었다. 우리 직장인들에게도 출근상을 줘야할 것 같다. 


'귀하는 1년 동안 단 한차례의 지각없이 천근만근 무거운 이불을 호기롭게 박차고 일어나 출근을 완수하였기에 성실한 일개미상을 수여함'

물론 포상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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