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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Feb 23. 2022

진흙탕 인생에서 머드팩 하며 사는 법

슬기로운 흙수저 생활

라디오에 나온 사연이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20살. 계약직 사무원으로 일하는 직장인이다. 3년 전 건설현장에서 노동 일을 하는 아버지가 사고로 허리를 다쳐 거동을 못한 채 몸져 누워 있고 엄마는 어렸을 때 집을 나가 감감 무소식이라고 한다.


오빠는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깡패가 되었고, 일 년에 한 번 집에 들어와 주인공에게 돈 내놓으라며 협박하기 일쑤. 급기야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사채까지 써서 빚이 4백만 원이나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무책임한 엄마는 떠나버렸고 몸이 아픈 아버지는 자신이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사고만 치는 오빠로 인해 삶이 더욱 팍팍 하고 괴롭다고 한다. 가시밭길과 진흙탕을 오가며 살고 있는데 힘을 낼 수 있는 용기를 달라는 사연이었다.


이 사연을 듣고 시야가 흐려지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공감능력이 지나치게 좋다. 심리학적 용어로 역전이(내담자의 감정이 전해져 상담자가 재경험하며 동일시하는 것. 올바른 상담자의 태도는 아니다)가 잘돼 쉽게 감정적으로 동요되며 객관적인 통찰의 상담이 어려웠던 적이 많다.


그래서인지 희망의 틈새가 보이지 않는 이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 또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사연 주인공을 위해 DJ 들의 멘트는 '힘내라,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로 응원하였지만 와닿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는 가. 또 어떻게 나아진단 말인가. 착하게 살면 동화에서 처럼 백마 탄 왕자님이라도 짜잔 나타나 진흙탕 속에서 꺼내 준단 말은 드라마에서나 통하는 헛된 희망 스토리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내가 내 환경을 무엇하나 선택하고 바꿀 수 없는 상황. 삶이 너무 힘들어 다 버리고 도망치고 떠나고 싶은 마음. 변화나 돌파구 따위는 없을 것 같아 혼자 서럽게 울며 방황하고 자포자기하다 결국 자신을 책망하고 원망하게 되면서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자신을 파멸하는 직전의 그 순간. 그 악순환을 나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가시밭길 찔리고 찔려 겨우 통화하면 이번엔 어두운 터널이 나온다. 암흑 같은 터널을 부딪혀 가며 가까스로 지나고 나니 이번엔 진흙탕이다.


내가 어찌하지 못하며 컨트롤할 수 없는 이 상황. 미래도 같을 것인지 아니면 더 나빠질 것인지 혹여  운 좋게도 좋아질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뒹구는 일일 것이다.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소중한 그 어떤 이와 함께 뒹굴 것이다.


그 어떤 이가 없다면 반려동물 또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소중한 그 무엇이 될 수 도 있겠다. (영화 '김 씨 표류기'에서 김 씨의 소중한 반려 친구는 오리배였다)


어떤 이와 어떤 것이 없어도 어떠한가. 그냥 뒹굴며 웃자. 

혹자는 진흙탕 속에서 웃을 일이 뭐가 있겠냐고 물을 것이다.


웃을 일은 있다. 찾아보면 분명히 반드시 있다. 우리가 진흙탕이라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안 보이는 것뿐.


지금은 진흙밖에 안 보이겠지만 진흙탕이라는 바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신경 쓰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것들이 보이게 마련이다.


내 배경 환경인 진흙탕을 빼고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진흙탕으로 머드팩을 할 수 있는 위트와 여유까지 생기게 된다.  


악조건 속에서도 피어나는 민들레 꽃이 있다. 민들레꽃 씨앗은 바람이 이끄는 대로 숙명처럼 따라가 정착한 이곳이 어떤 곳인지 따져 묻지 않는다.

그저 피어나기 위한 소명에만 집중한다.


진흙탕 이라고 울어봤자 뭐가 달라지는 가. 이왕 진흙탕에 빠진 인생. 얼굴에 머드팩이나 하고 데굴데굴 웃으며 굴러 유유자적 헤엄쳐 나가자.


(출처 : trav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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