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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Mar 02. 2022

'불알친구'가 위험한 이유

어느 날 모범생인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되었다면

가정법원 소년재판부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실체보다 소장에 기재된 비행 사실이 더 확대되어 있어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주 상담을 진행하게 된 준서군(가명, 중 1)은 [성폭력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제추행)으로 기소되었고 재판을 앞두고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상대가 자신보다 체격이 두배는 더 큰 동성 친구였다.


중 1학년 남학생이 동급생 동성 친구에게 성추행을?

결정문의 비행 사실을 열람해 보았다.



                                                             행 사 실 (요약)


'박준서(가명, 만 12세)는 같은 학교 학급 내에서 같은 반 학생인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21. 11월부터 12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중요부위를 만지며 추행함'


상담조사를 진행하면서 관련 자료를 받아 보니 준서 군은 모범생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현재부터 한차례 결석을 한 적 없이 개근하였고 여러 번 학급 회장도 했었다.


또한 담임교사들이 작성하는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를 열람해 보니 항상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는 등 배려심 많고 성심 착한 아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아이가 왜 성폭력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지 의아했다. 사건의 실상 내용은 이러했다. 준서 군은 학급 회장으로 모든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 소위 '인싸'였다.


재치 있는 말을 잘하고 장난을 좋아하는 준서군 주변에는 항상 무리 지어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에 대한 친분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상대의 중요부위는 '툭'치며 '우린 부랄 친구'라고 외치는 의식이자 장난 같은 행동이 있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학급에서 왕따나 은따는 아니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주변을 맴도는 시헌(가명, 중1)이가 있었다. 시헌이는 학기 중간에 전학을 온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창백한 친구였다.


준서는 학급회장으로서 약하고 외로워 보이는 시헌이가 조금 신경이 쓰였다. 두루두루 모두와 잘 어울리는 자신과 달리 시헌이는 친구 사귀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학급 친구들 무리에 껴서 노는 것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헌이에게 조금씩 말도 걸고 자신과 노는 무리에 애써 끼워주며 친구들과 어울리도록 하였다 시헌이와 어느 정도 (시헌이는 '조금 친해졌다'이었겠지만, 준서는 '많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친해진 후 준서는 앞서 말한 그 의식(중요부위를 치는 것)을 치름으로써 '너는 이제 우리 무리의 일원이 되었다'는 유대감과 소속감을 선사해(?) 주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 후 경찰에 사건이 접수되고 준서는 성폭력으로 조사를 받은 것이다. 사실 시헌이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사람이었다.


시헌이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개인주의적 성향이었다. 애써 끼워주지 않아도 되었고 그런 식의 친분 표현도 원하지 않았다.


시헌이는 또래 무리의 에너지와 분위기에 휩쓸려 동의도 못하고 거절도 못한 애매한 태도를 취했지만 사실 그런 행동이 몹시 불쾌했던 것이었다.


시헌이는 친밀하게 지내는 아버지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고 우리나라 문화와 다른 부분이 많은 유럽인 아버지는 몹시 놀라고 불쾌해하며 바로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실제로 만난 준서와 준서의 보호자 또한 몹시 당혹해하고 있었다.  준서는 집에서도 아버지와 서로의 중요부위를 만지고 도망가는 장난을 치며 친밀감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준서 아버지는 몹시 억울해하며 말했다.


"선생님, 우리 어렸을 때는 소위 부랄친구라고 부르며 서로의 것을 만지고 치고 도망가는 장난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이게 범죄가 된다니 억울합니다."


아버지의 심경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동의'라는 점이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동의가 구해지지 않으면 성폭력이 성립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동의라는 기준이 상대적이고 애매하기도 하다.


이런 경우 대부분 피의자 또는 가해자가 자신의 기준을 보편적 또는 일반적으로 관점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쟤도 당연히 그렇게 하고 싶을 거야'

'재도 나와 꽤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성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처벌이 강력해지고 있으며 성적 감수성이 또한 과거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그런데 구시대적 문화와 사고의 잔재가 남아있다. 그래서 이런 장난은 애초에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이 기본적으로 다르며, 친분의 표현이라는 것의 허용 기준 또한 다를 수 있음을 명심하자. 또한 제삼자의 시각에서는 충분히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준서 군은 성적 감수성이 미흡한 상태에서 상대의 거부적 의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준서군의 사건에 대해,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임하는 점, 피해자와 합의가 된 점, 충분히 반성하는 점, 보호자의 보호력이 양호한 점 등을 근거로 하여 선처 처분 의견을 냈지만 성폭력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나는 친하다고 생각해 한 행동이지만 상대는 아닐 수 있다. 나는 동의를 구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동의를 표현한 적이 없다(무반응은 동의를 한 것이 아니다)


이렇듯 인간관계에서는 개인간 착각에 의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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