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면서 비혼주의자와 결혼하지 못한 친구들과는 확연히 멀어졌다. 코로나로 이내 간간이 있었던 소규모의 그룹 모임도 차츰 없어지면서 연락도 뜸해졌다.
결혼을 했어도 아이가 없는 친구들과도 점점 멀어지고 일을 그만두고 가사와 육아만 전념하는 전업주부가 된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나니 친구가 없다.
친구라고는 아이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 또래 동네 엄마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전부이다. 아이에 의해 사귀게 된 엄마들은 아이가 그 친구와 멀어지면 또 자연히 멀어졌고, 아이와 남편 이야기를 빼면 사실 아는 것도 없는 껍데기 친구였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사이가 틀어질 때 업무가 불편해질 것을 염려하며 항상 조심스러웠고 나의 날것을 드러내기가 겁이 났다.
친구가 없어도 괜찮을까 조금 두렵기도 하고 없다는 사실이 창피하기도 했었다.
그나마 한 명 가장 친한 친구라고 느낀 친구마저도 멀어지는 경험을 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것이었다. 친구도 치솟는 아파트 가격에 불안을 느끼며 함께 청약을 공부했고 아파트 청약 정보가 생기면 함께 공유했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청약에 당첨된 것이었다. 사실 친구가 청약을 알게 되고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나로 인해서였다. 경제와 재테크에 무관심한 친구에게 아파트 청약을 공부하라고 책을 사주고 공부를 권한 것도 나였기에 내가 먼저 청약이 되었어도 친구가 축하해 줄 것이라고 당연 생각했었다.
하지만 친구는 축하와 기쁨보다는 자기가 안된 것에 더 집중하고 억울해하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청약이라는 공통 화제가 사라지자 연락도 뜸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친구의 기쁨을 질투하면 친구가 아니다.'
친구란 자고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친구 아닌가!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것은 쉽지만 오히려 기쁨을 나누기가 어렵다. 자신의 신세와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의 슬픔을 빌어 자신의 행복과 안위를 확인할 수 있지만 상대의 행복은 자신의 입장과 처지가 낮아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친구는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잠시 자신과 비교되더라도 진정한 친구라면 마땅히 축하하고 기뻐해 줄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히 친구가 없게 되었다. 씁쓸하기도 하지만 괜찮다. 애매하고 진정하지 않은 관계를 이어가느라 소모하는 시간과 노력들이 더 아깝다고 느낀다.
그 시간에 더 많이 읽고 쓰고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나은 것 같다. 그러니 친구가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쁨과 슬픔을 진심으로 나눌 수 있고 마음을 공감해 주는 친구 딱 한 명만 있어도 좋겠지만 없어도 괜찮다.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느라 들이는 노력을 나 자신의 내면을 보는 에너지로 쓰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