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해 보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나에게는 주로 지나가기만 했던 동네인 신촌을 가게 됐다.
회사에서는 매우 가까운 곳이었지만, 그녀는 제발 천천히 와달라고 극구 부탁을 했다. 두 번째 보는 날이긴 했지만 생일이라는 말에 나는 케이크와 싱싱해 보이는 딸기, 그리고 술을 사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평소 길을 잘 못 찾는 편은 아니지만, 초행길이라 그런지 땀을 뻘뻘 흘리며, 그곳을 찾아갔다.
그 집에 그녀가 있었다. 사실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160cm 정도의 키에 통통한 볼을 가진 그녀는 내가 호감을 느꼈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우리는 식탁에 앉아 저녁과 함께 술을 먹기 시작했고, 여느 전화통화나 첫 만남 때처럼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그녀는 갑자기 성격검사지 같은 것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다양한 검사 항목들에 대한 결과가 있었다. 딱히 그녀는 설명 없이 "제가 어릴 때 한 건데, 이래도 괜찮아요?" 난 속으로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곳에 쓰여 있는 지표를 난 해석하기 힘들었지만, 단 한 가지는 눈에 들어왔다.
'사물의 신뢰도는 높으나,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음'
그 이후로는 별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셨고, 케이크에 촛불을 켜서 생일 축하도 해줬다. 우리는 그러게 짙은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너무 술이 취한 관계로 집을 가지 못했고, 나는 다음 날 그녀 집에서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힘들어했지만, 또 지하철역까지 날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나는 내가 알아서 가겠다고 했다. 몇 번의 서로 간의 배려가 이어진 결과, 그녀는 결국 나의 회사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너무 힘든 아침이었지만 호감이 생긴 상대의 배려를 받는 일은 너무 날 뜨겁게 했다.
이후 설 연휴를 보내기 위해 지방을 가던 나는 출발 이후 전화를 했다. 그녀도 휴일이었으므로, 잠깐의 통화를 한다는 것이 내가 고향에 도착할 때까지인 4시간 정도를 통화하게 됐다. 보통의 연인들에게도 통화가 어려운 시간이지만, 우리는 즐겁게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연휴 기간 동안 매일 밤 통화를 했다. 뭐 그렇게 할 말이 많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린 서로 말이 많았다. 그간의 인생, 지나온 일, 친구와의 일 등을 이야기했다. 다만, 그 친구는 과거 연인들과의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했다. 잘 보이려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좋지 않았던 연애 경험은 득이 될 것이 아니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서울에 다시 올라온 나는 그녀를 보기로 했고, 다시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두 번째였기 때문에 아직 그녀의 집은 불편했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고, 모르는 사람이 많은 곳은 불편하다는 그녀의 말에 다시 그녀의 집을 찾은 것이다.
나는 그때 우리가 한 번 만나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심 고민하는 기색을 내 비췄지만, 그녀는 수락을 했다. 나는 새 여자친구가 생긴 것에 기뻐했고, 우리가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다만, 그간 사회성이 조금은 결여된 모습과, 독특한 어투, 그리고 그 성향은 매우 일반적이지는 못했지만, 내가 다 상쇄를 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앞으로 닥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고, 그녀는 반대로 정확히 인지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