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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o Mar 08. 2023

회피형 그녀에게 잠수 이별을 당하다⑧

경험해 보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며칠 전 드디어 예약한 심리 상담소를 찾았다. 몇 년 전 스스로 고민이 많아 신경정신과에 1번 방문한 적은 있었다. 사실, 그때도 딱히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나왔던지라 과연 이렇게 가보는 게 큰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다. 


생각보다 아늑하게 꾸며놓은 상담실에서 상담사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그간에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말을 하면서도 꽤 뒤죽박죽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도 설명한 적 없었던 일에 대해서 최대한 자세히 말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매우 부족했다. 


이전 글에서와 같은 이야기보따리를 막 풀어놨지만, 더 많은 말들이 하고 싶었다. 뭔가 가슴에 답답함이 풀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더 답답했다. 정해진 시간 때문에.


그러던 중 선생님은 한 마디를 던졌다. 


응당이라는 말씀을 상당히 많이 하시네요? 스스로가 세워놓은 기준이라는 것이 많으신가 봐요?


정곡을 찔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 솔직하고 싶어서 이야기드리는 건데, 이 경우에 상식적인 수준은 아니지 않나요?" "이해는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너무 정도를 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다시 말씀드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적어도 나의 가이드라인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선을 넘고, 넘지 않고는 상대들이 나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상대방이 약속 시간에 늦는다고 한다면, "미안한데, 1시간 정도 늦을 거야~"라고 약속 시간보다 먼저 연락을 준다면 그 상당히 잘 기다리는 편이다(잘 기다린다는 의미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변수가 생긴 것은 유쾌하지 않지만, 이야기 한 시간대로 나는 다른 것을 하며 보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초초와 불안이 엄청나게 증폭된다. 이에 따라 감정 선도 엄청나게 요동친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쉽게 낸다. 한 번 든 생각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때론 쉽게 이런 감정과 이유를 표출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그녀와의 일로 확장해 보자면, 사실 분위기가 좋을 때도 나는 불안했다. 계속해서 나를 기다리게 하는 말투와 행동들, 깔끔하지 않은 약속들,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정과 사랑한다는 안정감이 생길 수 없는 언어적 표현 등이 가면 갈수록 나의 불안감을 높였다. 


불안감이 높아지다 보니,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나는 새벽에 꼭 한 두 번씩 깨곤 했다(보통의 나라면, 잠을 상당히 잘 자는 편이다). 나보다 조금 더 이런 쪽으로 신경을 덜 쓰는 사람이었다면, 저런 상황에서도 큰 신경을 안 썼겠지만, 불행스럽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은 나에게 아마 집착-불안형 애착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하셨다. 불안형일 경우도 상당히 골치가 아프다. 찾아본 결과, 사실 불안형은 연애를 통해서 안정감을 갖고 싶어 하는데, 이 경우 상대방이 편안함을 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연애는 독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형은 회피하는 상대를 보며, 불안감, 배신감, 답답함, 우울함을 느끼면서 감정의 널뛰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널뛰기가 시작되면 그것은 상당한 고통이다. 이 때문에 안정형은 이런 경우, 연애를 이탈한다. 하지만 불안형은 이를 바로 잡고, 안정감을 갖고자 더욱 집착하게 되고, 이는 곧 사랑이라고 느낀다. 


불안형도 역시 안정형을 만나면, 좋은 연애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만, 불안하지 않은 상대에게는 오히려 권태로움을 느껴 지루한 연애로 느끼거나, 마음이 요동치지 않아 설레지 않는 감정을 갖는다고 한다. 선생님은 다시 한 마디를 나에게 건네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감정의 기복이 상당히 있으시네요. 특히 화나 짜증을 내는 식으로 감정적인 표현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다. 연애 상대들에게 늘 들어오던 부분이고, 나는 그냥 내 기본 인성의 문제가 나빠서 벌어진 일인 줄 알았다. 혹은 상대방의 문제라고 둘러댄 적도 많았다. 이전 연애들에서 차분히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를 생각하는 이별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손에 꼽을 정도였고 대부분은 감정싸움이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 상대가 누구든 나는 연애를 시작하면, 대부분 연애가 1순위가 됐다. 절절매야 되는 상대한테는 오히려 0순위가 됐을 정도다. 안정감이 있는 상대에게는 오히려 기만하는 감정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경우에도 갈등은 발생했고, 갈등 시에는 감정적으로 돌변해 상대와 싸웠다. 그 이후는 잦은 짜증으로 일관했다. 결국, 나를 버틸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이제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그간의 문제를 파악하고, 다시 꼬인 줄을 풀어볼 수 있는 시간이 도래한 듯하다. 나의 인생은 나로부터 출발하고, 어느 순간 그 여정이 잘못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해도, 다시 돌아가 다른 길을 걸어가면 될 일이다. 


다음 상담은 1주일 후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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