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심리 상담②
나는 집안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사실 좌절의 시기이기도 했다. 성적이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몰랐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언어 성적만큼은 좋았지만, 다른 과목들이 문제였다.
특히 수학은 고2 때부터 포기를 했다. 이른바 수포자(수학포기자)였다. 이를 타개하고자, 과외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 1달간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수학에 대한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우리 집은 돈이 없었다.
아버지는 개인택시를 팔았다. 도박 빚 때문이었다. 집안에서의 갈등은 여전했다. 가끔은 더 심하고, 가끔은 덜 심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어떤 면에서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평소 매우 과묵하고,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집안 사정은 집안 사정이었지만, 결국 나는 수능도 망했다. 믿고 있었던 유일한 희망인 언어에서 난생처음 본 점수를 받아 들었다. 소심한 면이 많던 나는 그 긴장감에 수능을 망쳤던 듯하다.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모른다.
결국, 원하는 과에는 들어가게 됐지만 원하는 학교는 아니었다. 집에서는 재수를 시켜줄 수는 없다고 했다. 진학 후 하숙이나 자취를 하기 위해 목돈이 어느 정도 필요했지만, 사정이 어려워 외사촌형이 친구들과 사는 집에 들어갔고, 그 집에서는 항상 눈치를 봐야 했다. 내 방도 없었고, 언제 어떤 사람이 얼마나 들어올지도 몰랐다.
그나마 사촌형이 있을 때는 좋았지만, 사촌형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사촌형의 친구들과 내가 같이 살게 됐다. 여러 사람이 살다 보니 도시가스 요금을 내지 않아, 끊기기 일쑤였다. 그 이후 나는 고시원과 친구집 등 여러 곳을 오가며 살았다. 그중 옆 방 소리가 너무 잘 들리고, 비좁고, 햇빛조차 들지 않는 그 고시원은 5년여를 보낸 장소이기 때문에 특히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 약 6년 전 처음으로 반지하 방을 얻었다. 환경이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혼자 있는 공간이 처음 생긴 것에 마음이 놓였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아니었다. 당시 잘 다니던 직장에서 마찰이 생겨 입사 1년 반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바로 재취업이 될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그 이후 나는 10개월 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뒀다고 집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아파도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돈이 없어도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몇 개월이 흘러 내 수중에는 500원만이 남았다.
친한 친구들이 먹을 것을 사다 주고 가고, 간혹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알바를 하면 면접을 볼 수 없고, 면접을 보기 위해서는 알바를 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월세도 밀린 지 한참이었다. 나는 인테리어 현장, 기차역 야간 현장, 일용직, 문서 타이핑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리고 어느 회사에 재 취업을 하게 됐고, 그 뒤로도 나는 이직에 이직을 거듭했다. 그리고 지금 회사를 다닌 지는 6년째가 됐다. 이런 내 인생의 일부분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대단하게 살아오셨네요 이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드세요?
두 번째 심리 상담
감사한 말씀이지만, 사실 별 느낌은 없어요. 그냥 그런 말이구나 싶어요.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외롭게 살아왔었다는 사실도 힘겨운 일이겠지만, OO씨는 남들의 칭찬을 받았을 때 상당히 어색해하는 것 같아요. 그 의도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는 것 같고요. 그런 적이 많이 없기 때문이죠. 사실 남들이 하는 칭찬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 되는 건데, 앞으로는 그렇게 하는 연습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아.. 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나도 모르게 칭찬을 받는 것도 어색해할 정도로... 그 오묘한 기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익숙해질 수 없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