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
지난 이별 그 후③ 이야기에서는 나의 유년시절 그리고 청년 시절까지 불우했던 이야기만 늘어놓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이 꼭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어려움들 속에서 운동을 하며 즐거웠던 시절들도 있고,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만나며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다. 열심히 돈을 모아 원하던 것을 사기도 했고, 매우 느렸지만, 더 나은 환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월들을 옆에서 지켜봐 준 사람들도 많았다.
서울에 사는 것이 뭐 대수냐겠냐만은 왠지 서울을 떠나게 되면(외국을 가지 않는 이상), 그간 내가 노력해 오던 것을 실패한 패배자가 되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서울 살이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런 나의 인생을 절친들에게 말할 때는 소위 나는 서울에서 '바퀴벌레처럼 살아왔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누구나 인생의 삶이 그렇듯 나 역시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즐거움', '새로움', '어려움', '좌절', '외로움' 등의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한 삶을 살았다. 다만, 나는 긍정적인 것들은 무시하고, 부정적인 것에 사실상 방점이 찍혀 있었다. 내가 긍정적이었던 것은 내 사고가 아니라 말이었다. 이유도 단순하다 '남들이 그렇게 바라봐주길 바랐으니까'
얼마 전, 이 일에 관해 한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 친구는 4살 때부터 알고 지냈다. 그러니까 약 35년째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나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해도 내가 살아온 흐름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친구다. 그 친구가 통화에서 말하길,
"네가 요새 자존감이 떨어져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어린 시절부터 본 너는 그런 적이 없었어. 어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독설을 좋아하고, 좋고 싫은 거에 대해서 분명히 말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니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냐? 그러니까 난 자꾸 네가 니 스스로의 잘못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듣고 보니, 최근 내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라고 보는데?" 나는 반문했다.
그냥 네가 너무 힘든 사람한테 걸린 거야. 그냥 그게 다야. 내가 책에서 봤는데 사람은 늘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려고 한대. 머리가 좋고, 고민이 많을수록 더욱 그런 데이터를 많이 돌리게 된대. 문제는 긍정적인 가정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부정적인 가정들만 계속해서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거지.
다시 말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부정적인 생각이 늘어난다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힘들 때 운동을 더 해라 이런 것들은 몸이 고통스러우면, 그 돌아가는 생각을 강제로 끊게 만드는 거지.
그러니까 넌 그냥 이제 바쁘게 살아라. 운동을 하던지, 봉사활동을 가보던지, 일을 더 하던지, 새로운 거에 도전한다던지 그냥 몰입할 수 있는 거면 뭐든 다 해~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봉사활동, 운동, 동호회 등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