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별다를 것이 없었던 평일 오전.
잠시 통화가 가능하냐는 집주인 할아버지의 아들분의 연락이 왔다.
실은... 조금 돌아가신 지가 되셔서요...
나는 다세대 주택에 산다. 집주인 할아버지는 맨 꼭대기인 3층에 사셨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1층 집 앞 집은 주인 할아버지의 아들 가족이 살고 있다. 가끔 아버지 대신 일을 처리해 주기 위해 연락이 온 적은 있었지만, 갑자기 통화가 되느냐는 것을 물었을 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후 통화에서 들어보니, 집주인 할아버지는 약 1달 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로 인해 월세나 관리비 등을 아들이 받기 위해서 연락을 준 것이었다. 세입자들 때문에 조용히 처리했는지 몰라도 그 말을 듣고 나니 아들분 집 앞에 제사 용품 박스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당시도 '설마...'라는 생각은 떠올랐지만,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생각을 접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조금은 기분이 이상했다. 과거의 기억들 때문이었다.
나는 이 집에 들어와 산지가 약 7년 정도 됐다. 처음에는 반지하 방으로 들어와서 지금은 1층에 산다. 이 집에 처음 오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난 사정이 더욱 좋지 못했다. 한 때, 친구와 같이 살았던 나는 집도 급하게 구해야 했다.
카페를 통해 구경하던 중 괜찮은 집을 찾아냈다. 급하게 나가야 해서 살고 싶은 집인데 양보하는 거라는 사람을 만나 집을 구경했다. 반지하였지만, 500만 원에 월 30만 원을 줘야 되는 방 치고는 크기가 컸다. 그 사람도 당시 주인 할아버지가 좋으신 분이라 했다. 나는 그날 이사를 결정했다.
불을 끄면 어두컴컴했지만, 혼자 사는 그 공간이 너무 행복했다. 당시 나는 회사 사람과 갈등이 있어서 성급하게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지만, 혼자 있는 시간의 자유로움과 나태함은 꿈만 같았다. 그런 감정만 이어졌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 행복감은 금전적인 부족으로 이어졌다.
생각만큼,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너무 수입이 적거나 안 좋아 보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원하고, 면접보고, 선택하는 시간까지 수입은 없었다. 결국 월세를 내지 못하는 달이 생겼다. 30만 원이 수중에 없었다.
처음이야 이렇게 저렇게 대처가 가능했지만, 수입이 몇 달간 전무후무하니 월세를 내기에 빠듯했다. 어쩌다 한번 월세가 밀렸는데, 먹고사는 게 급급하다 보니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월세를 안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지난 시간만 10개월.
당시 집주인 할아버지는 10개월이 지나서야 월세가 좀 밀린 것 같다고 처음 전화를 주셨었다. 이 건물에 한 두 집이 사는 게 아닐 것인데, 그걸 알면서도 별 말을 안 하고 참아주신 것 같았다. 그게 미안해서 밀린 월세라도 갚아보자고 별 일을 다 했다. 신촌, 의정부, 지방까지 막노동이어도 돈이 될만한 건 다 했다. 그리고 나서야 목돈이 된 밀린 월세를 다 드릴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수입 가구 회사에 들어갔다. 연봉을 많이 주는 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방구석에 틀여 박혀서 알바를 찾는 나보다는 훨씬 좋았다. 이후 서서히 난 정상적인 삶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난 집을 옮기지 않았다.
오래 이 건물에 산 만큼, 가끔 집주인 할아버지와 연락하거나 뵐 일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실제 뵈었던 건 지금 살고 있는 1층으로 옮기면서 계약서를 쓸 때였다. 늘 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그날은 집에서 모자를 안 쓰고 계셔서 이마가 크게 부풀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이상이 있으신 것만은 분명했다.
그게 할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어쩔 순 없었지만, 장례식에 가지 못한 게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 할아버지에게는 한 때 참, 골치 아픈 세입자였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죄송스럽고 한편으로는 좋은 인품을 가지신 분이었기에 좋은 곳에 가셨으리란 생각도 든다.
그간,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