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사진출처: unsplash@soymeraki]
대학원 동기 A는 하우스 메이트였다. 중국에서 1년 동안 한 집에서 생활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함께 등하교를 하고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며 취업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A는 유머러스해서 함께 있으면 항상 즐겁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와 취향도 비슷해서 주말에는 같이 농구도 하고 시험이 끝나면 밤새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다. 유학생활에서의 1년은 한국에서의 2~3년과 비슷한 친분이 쌓인다. 어느 고등학교 친구보다도 더 가까워졌고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서로의 다름을 느끼는 순간
동기 A는 공부도 잘했다. 나는 그저 같이 게임하는 친한 친구로만 생각했었는데 교수님들이나 졸업한 선배들은 그 친구의 똑똑함을 알아보았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두고 이미 증권사에 취업이 결정되었다. 반면 나는 졸업 직전까지도 취업이 안 된 상태였다. 둘 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 친구는 취업 턱을 쏘겠다며 나를 불러냈다. 3개월 만에 본 친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함께 400 위안 (약 7만 원) 자전거를 타고 즐거워하던 친구는 외제차를 타고 있었고 함께 캔맥주를 마시던 친구는 이제 북적거리는 술집이 아닌 바에서 양주를 마시자고 했다. 나는 20만 원이 넘는 양주를 얻어먹기 미안해서 그냥 호프집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자고 했지만 친구는 이제 그곳이 더 편한 것처럼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바의 분위기, 입에 맞지 않는 술, 그리고 무엇보다 변한 친구의 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모든 게 잘 통할 것 같았던 친구의 변함과 다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가치관
다행히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이 되었다. 하지만 나와 친구는 점점 달라져갔다. 가끔 퇴근하고 만나면 패션회사에 다니는 나는 조거 팬츠에 맨투맨을 입고 있었고,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정장을 차려 입고 손목에는 고급 시계가 있었다. 친구는 손목시계를 보여주며 “증권 쪽은 이런 걸 중요하게 보더라고. 사실 별로 살 생각은 없었는데 사수가 하도 뭐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샀어.” 라며 멋쩍게 웃었다.
우린 서로 다른 옷차림만큼이나 회사생활도 많이 달랐다. 오랜만에 만나면 자연스럽게 근황 얘기를 하고 회사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 친구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공감대가 형성되기보단 대화가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 친구는 증권회사에 취업한 학교 동기들과 더 자주 어울렸고, 나 역시 회사 사람들과 있는 시간이 더 편하고 좋았다.
나이가 들면서 가치관이 변하고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진다. 나와 동기 A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서로의 가치관의 차이는 커져갔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졸업식 때의 분위기가 생각난다. 취업이 결정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뉘었다. 나는 그렇지 못한 자에 속해서 인지 몰라도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했던 사이이고 비슷한 실력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취업시장에서 받아 든 성적표는 저마다 달랐다. 그 성적표에 따라 앞으로 달라질 사회생활을 생각하니 동기들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걸 느꼈다.
동기 A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부러워한 적은 없다. 그 동기가 잘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지금까지도 기뻐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건 한 때 소울메이트나 다름없을 정도로 잘 통했던 동기와 조금은 멀어졌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중국은 여러 번 갔지만 유학 생활했던 북경은 가보질 못했다. 출장 갈 기회가 없기도 했지만 휴가 때도 시간 내서 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일까? 변해 버린 나와 친구의 모습처럼 혹시라도 내 추억의 장소들도 변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친구와 함께 북경 여행을 가고 싶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 순수했던 그때로 돌아가 학교 매점에서 5위안짜리 커피를 마시고 자주 가던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싶다. 그때만큼은 나와 친구도 10년 전 모든 게 잘 통했던 그 시절의 우리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