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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Mar 29. 2020

‘베프’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

서로에 대한 기대감 내려놓기

[사진출처: unsplash@gerritvermeulen]


베프, 절친, 소울메이트 모두 한 때 내가 좋아했던 단어들이다. 예전에는 매주 만났던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절친, 베프라고 부르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했었고, 음악, 영화 취향이 비슷한 회사 동료를 만나면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며 친근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베프인 A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전람회와 윤상을 좋아하던 음악 취향도 같았고 둘 다 ‘세가 새턴’이라는 게임기를 갖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게 엄청난 동질감을 갖게 해 주었다.) 집도 걸어서 3분 거리였기에 우리는 친해지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중학교 졸업 후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받게 되면서 더 친해지게 되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내 친구들은 모두 A와 친해졌고, 또 나 역시 A의 친구들과 모두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A를 중심으로 패밀리가 형성되었다. 나와 A는 말 그대로 모두가 인정하는 베스트 프렌드였다.



베프라는 단어의 함정


우린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친하게 지냈다. 각자 결혼하기 전까지 이사 가지 않고 그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직장 생활하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났다. 날씨가 좋으면 공원에서 산책을 하기도 하고 고민이 있을 때면 밤새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주말에 그 친구와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은 평일에 회사에서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처럼 느껴졌다.


각자 결혼을 한 후, 나는 서울 서남권으로 친구 A는 동북권에 신혼집을 얻으면서 자주 보기 어려워졌다. 우린 집뿐 아니라 서로의 사무실도 워낙 먼 거리였기 때문에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주말에는 각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고, 매주 만나던 사이는 이제 분기별로 한 번 보는 사이가 되었다.


친구 A는 집이 가까운 다른 고등학교 친구들과 더 자주 어울렸고 나만 빼고 모이는 횟수가 많아졌다. 인스타를 통해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마라톤을 하거나 맥주를 마시는 사진을 볼 때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린 베프인데'라며 드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나친 기대와 실망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 A에게는 친구 B라는 또 다른 베프가 있었다. 나 역시도 무척 좋아했던 친구였고 우리 셋은 친구 A의 집을 아지트 삼아 자주 모였다. 하지만 오래전 A와 B는 절교하게 되었다. 친구 A가 대학생이 되면서 과 활동, 동아리 활동 때문에 바빠져서 연락이 뜸해졌고, 친구 B는 변한 A의 모습에 섭섭함을 느꼈던 것 같다. 친구 A와 B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고 내가 중재하려고 했을 땐 이미 둘의 사이는 돌이 킬 수 없이 멀어진 뒤였다. 결국 난 둘의 절교를 막지 못했다.


둘은 왜 절교하게 된 걸까? 서로에게 너무나 큰 기대를 했던 만큼 실망감도 컸던 것 같다. 사실 주변을 봐도 절교하는 경우는 약간 서먹하거나 덜 친한 사이가 아닌 절친이었던 관계가 절교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베프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인간관계의 갈등은 지나친 기대에서 시작된다. 친구가 나를 1순위로 생각할 거라는 기대, 애인이 이번 생일 때 내가 말하지도 않아도 센스 있는 선물을 해줄 거라는 기대 등등. 대부분의 갈등은 내가 기대한 만큼 상대방으로부터 받지 못했을 때 비롯된다.


기대감 내려놓기


친구 A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한 발짝 떨어져 우리의 관계를 바라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친구 A는 지금만으로도 내게 충분히 소중한 존재다. 우리가 친해진지도 어느덧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학창 시절의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고, 함께 있으면 잠시나마 고등학생 시절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준다. 만나면 너무나 마음이 편하고 서로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사이기도 하다. 기대를 버리고 나니 친구 A의 존재가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혹시 최근 소중한 사람에게 실망한 기억이 있다면 잠시 기대감을 내려놓고 한 발짝 떨어져 둘의 관계를 바라보는 건 어떨까? 기대감에서 벗어나면 그 소중함이 더 크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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