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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Mar 07. 2020

억지로 친구 만들지 않기

때론 혼자여도 괜찮다

[사진출처: unsplash@sashafreemind]


매일 오전 9시 회사 로비에 있는 카페에 간다. 8시에 출근해서 밤사이에 온 이메일과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잠시 카페에 가서 10분 정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의 일상이다. 대부분은 동기나 부서 내 친한 사람끼리 내려와서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혼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가끔 회사 지인들이 말을 건넨다.


“혼자 내려왔어? 혼자 올 거면 나한테 같이 가자고 말하지 그랬어.”


라며 챙겨 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저 선배처럼 혼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는 ‘나도 혼자 있는 게 싫어서’ 혹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억지로 친구를 만든 적이 있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어학연수를 위해 1년간 휴학을 하고 돌아오니 이미 대부분의 친구들은 졸업을 한 뒤였다. 사실 졸업을 코앞에 둔 고학번이 강의실이나 매점에서 혼자 앉아 있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나는 왠지 그렇게 보이기 싫었고 억지로 친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같은 전공수업을 듣던 후배 한 명이 있었는데, 나와 동갑이었지만 학번은 내가 더 높았다. 동갑이라 반갑기도 했었고 몇 번 얘기를 해보니 왠지 나와 코드도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 과에 이상한 똥 군기가 있어 나이가 같더라도 과 선배에게는 존댓말을 해야 하고 ‘선배’라고 불러야 했지만 나는 그 후배에게 친구처럼 말도 편하게 하고 호칭도 원하는 대로 부르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었다. 나름 전공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기도 하고 시험 기간에는 내 필기노트도 선뜻 내어주었다.



평등하지 않은 관계의 끝


수업도 계속 같이 듣고 공강 시간도 함께 보냈지만 이상하게 그 친구와의 친밀도는 올라가지 않았다. 내가 베푼 만큼 돌아오는 게 없었고 그 친구에게 실망하게 되었고 마음은 더 공허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 입장에서는 굳이 나와 친구가 될 필요는 없었다. 1학년 때부터 계속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도 많이 있었고 그 동기들과 어울리는 게 더 편해 보였다. 가끔 혼자 있을 때도 그는 별로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혼자 읽거나 당당하게 혼밥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 평등하지 않은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은 그 친구의 연락처도 남아 있지 않고 이름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와 코드가 잘 맞았다고 느꼈던 것도 어쩌면 정말 코드가 잘 맞았던 게 아니라 의도적인 친분을 위해 억지로 내가 맞췄던 건 아닐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억지로 맺어진 관계는 평등한 관계가 아닌 갑-을의 관계로 이어졌고 결국 지인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없었다.



30대 후반에야 깨닫게 된 것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이 있다. 20대 초반에 처음 이 소설을 읽은 후에도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책을 다시 구입해서 읽곤 했다. 최근에도 이 소설을 다시 읽었는데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구절이 있다.


“고독한 게 좋아?” 그녀는 턱을 괸 채 물었다.
“혼자서 여행하고 혼자서 밥 먹고 강의도 혼자서 뚝 떨어져 앉아 듣는 게 좋아?”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은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그 전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20대에는 저 문장에 별 감흥이 없었지만 대부분의 친구가 자연스럽게 정리되어버린 30대 후반인 지금. 나에게는 마치 인생의 진리처럼 느껴졌다. <상실의 시대> 소설이 1987년도에 발표되었고 그 당시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만 38세였는데, 30대 후반의 무라카미 하루키도 지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었고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도 20대에는 인간관계로 상처 받고 허무함을 느끼고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억지로 친구 만들지 않기'를 깨닫게 된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와 함께 있었던 시간 중에 즐거웠던 기억은 별로 없다. 차라리 그 시간 동안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나 심리학 서적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억지로 누군가와 친구를 맺기보단 때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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