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은 우리를 행복하게 했을까?
[이미지 출처: YTN 뉴스화면 캡처]
5년 동안 거의 하루도 대화가 끊이지 않았던 단톡방이 있다. 5년 전 해외에서 함께 생활을 했던 우리 세 명은 나이, 연차가 모두 비슷했고,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단톡방을 만들게 되었다.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단톡방은 계속 유지되었다. 한 명도 퇴사하지 않고 지금까지 회사에 남아 있기 때문에 공감대도 형성이 되었고, 해외에서 함께 생활을 했던 추억도 이 단톡방을 유지시켜 주었다.
변질된 단톡방의 목적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톡방에서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 세 명의 정치성향은 각각 진보/보수/중도로 달랐는데 선거철이 되면 100분 토론 뺨치는 열띤 토론전이 펼쳐졌다. '이렇게 정치에 진심인 사람들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선거철, 정치 이슈가 터질 때마다 논쟁이 펼쳐졌고 서로 감정싸움을 겪고 난 후,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 것으로 단톡방의 규칙을 정했다.
하지만 단톡방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치 얘기에서 자연스럽게 부동산 얘기로 화제가 옮겨 가게 되었고, 또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역시나 '이 사람들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문지식, 용어가 총동원된 수준 높은 대화였다. 우리 단톡방의 금기어가 '정치', '부동산'으로 하나 더 늘었을 뿐이었다.
단톡방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친목을 다지는 용도가 아닌 그저 각자의 생각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대나무 숲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일이 터지게 된다. 한 명이 계속해서 코로나 음모론을 얘기하기 시작한 것. 코로나는 그저 매년 스쳐가는 독감 중 하나일 뿐인데 이걸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과대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는 것. 코로나를 무서워하는 건 이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침내 내 인내심이 한계를 넘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 단톡방을 나가겠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강요하는 걸 참을 수 없습니다. 최근 카톡 대화를 쭉 살펴봤는데 더 이상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화는 없습니다. 같은 회사,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 셋이 마지막으로 밥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시나요? 이 단톡방은 우리의 관계를 더 해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오프라인에서만 뵙죠."
단톡방은 우리를 행복하게 했을까?
단톡방을 나가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단톡방에 남아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그날 따로 사람들을 만나서 그동안 단톡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인연을 끊자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다행히 상대방도 일방적으로 본인의 생각을 강요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단톡방이 사라지고 우리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단톡방을 나간 뒤 관계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서로 적당한 선이 생기면서 예전처럼 정치, 부동산 얘기로 싸우는 일도 사라졌고 오프라인에서 만나 식사하는 횟수도 더 많아졌다.
생각해보면 단톡방이 생긴 이후로 다른 친구들과도 통화를 하거나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예전에는 통화를 해서 안부를 묻던 친구들과도 이제는 그저 단톡방에서 깊이 없는 대화만 있을 뿐이다. 단톡방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때이다. 과연 단톡방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