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인 관계 맺음에 대해
[사진출처: unsplash@alex_andrews]
나는 흔히 말하는 ‘먼저 연락 잘 안 하는’ 타입이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인간관계에 있어 수동적인 셈이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상대방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고,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상대방이 먼저 연락 해오면 연락을 계속 이어 나갔다. 어떤 사람과 계속 관계 맺음을 할지 온전히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결정대로 행동하곤 했다.
내 의지가 부족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 의지가 부족했었다. 내향형인 나로서는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는 게 시간뿐 아니라 에너지도 필요로 하는데 때론 그 점이 귀찮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먼저 연락을 하거나, 과모임, 동아리 모임처럼 한 명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모임에는 참석을 해도 능동적으로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런 나의 수동적인 관계 맺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소중한 사람들과 멀어졌던 걸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대학 때 만난 한 친구였다. 우린 신입생 때 교양 과목에서 만나 친해졌는데 다른 과였음에도 졸업 때까지 계속 친하게 지냈다. 졸업 후 2~3년 정도 지났을 무렵 친구가 결혼 소식을 알려왔지만, 당시 취업이 계속 미뤄지고 여러 가지 상황이 좋지 않았던 나는 친구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친했던 사이였기에 미안함은 더 컸고 미안한 마음에 먼저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적극적인 관계 맺음 시도
어느덧 연락이 끊긴 지 5년이 되었고, 관계를 다시 이어 나가기로 결심하고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5년 만의 연락에도 친구는 반갑게 답장해 주었고 우린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얼굴을 보고 친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당시 내 상황이 좋지 못해 결혼식에 가지 못했고 미안함 때문에 계속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친구 역시 "친한 친구인데 안 와서 섭섭했어."라고 얘기했다. 친구는 내 결혼 소식을 묻더니 얼마 전에 결혼했다는 나의 대답에 급하게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에 들어온 친구의 손에는 만 원짜리 열 장이 있었다. 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봉투를 준비 못했네. 늦었지만 축하한다."라면서 돈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역시 그 친구다운 격의 없는 표현이었다. 서툰 표현이었지만 따뜻함이 느껴졌다.
우린 오랜만에 만났지만 대화가 잘 통했다. 친구도 딱 나만큼의 삶의 무게와 인생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대학생 때는 대낮부터 소주를 마셨던 그 친구와 나는 맥주 500cc 두 잔씩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학생 때와 같은 활기와 취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 친구와의 시간이 좋았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그동안 가슴속 한 구석에서 나를 괴롭히던 응어리가 풀어진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인간관계의 3대 난제: 가족, 직장상사, 친구
주변 사람들이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경우를 보면 크게 세 분류로 나눠진다. 가족, 직장상사, 친구 (지인도 포함)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중 대부분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다. 먼저 가장 중요한 가족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이 정해져 있고, ‘일은 고를 수 있어도 직장 상사는 고를 수 없다’라는 말처럼 우리에게는 직장 상사의 선택권도 없다. 그럼 우리 의지대로 선택 가능한 건 친구 하나뿐인 셈이다.
어쩌면 우린 이 하나뿐인 선택권을 너무 소홀히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의지대로 적극적인 관계 맺음을 하기보단 상대방의 선택에 맡기는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혹시 나처럼 '먼저 연락 잘 안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누구와 계속 연락을 이어나가고 누구와 관계를 정리할지 본인이 적극적으로 결정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