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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Apr 20. 2020

결혼식을 위해 친구를 사귀나요?

잘못된 결혼 문화의 폐해

[사진출처: unsplash]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알게 된 건 대학교 때부터였다. 중고등학생 때는 반에서 나와 마음 맞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고 마음에 안 드는 친구는 그냥 부딪히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대학교 때는 마음에 안 맞더라도 팀별 과제, 동아리 활동 등 어쩔 수 없이 서로 부딪치면서 지내야만 했다.


과 여자 후배 한 명도 유독 인간관계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한 번은 나에게 과 동기들과의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았는데 내가 옆에서 지켜보기엔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도 마찰이 있음을 알고 놀랬었다.


나: 둘이 친한 거 아니었어? 근데 그 정도로 스트레스받는 사이라면 그냥 인사만 하는 적당한 사이로 지내.

후배: 저 친한 친구 별로 없단 말이에요. 제 결혼식에 와줄 친구는 남겨둬야죠.

나: 그게 그렇게 중요해?

후배: 그럼요. 오빠도 인맥 관리 잘하세요. 남자는 하객이 적으면 능력 없는 사람으로 보이잖아요.


저 후배의 한 마디가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저 후배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혼식 때 부를만한 친구가 없으면 어쩌지?', '결혼식을 위해 저 친구와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나?'처럼 말이다.



문제는 한국의 결혼식 문화다.


결국은 보여주기 식의 결혼식 문화가 낳은 슬픈 현실이다. 만약 한국의 결혼식 문화가 스몰웨딩이었다면 저 후배가 대학교 내내 스트레스받으면서 마음 안 맞는 과 동기와 친하게 지내야만 했을까? 과 동기와 싸우고 상처 받을 때마다 '지금이라도 손절할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중에 결혼식 때 하객이 없어 단체 사진 찍을 때 발생할 민망한 상황이 눈앞에 아른거렸을 것이다. 결혼식날 주인공이 되어 축하받고 앞으로 행복한 일들만 생각해야 할 신랑 신부가 왜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하객수에 신경 써야만 하는 것일까?


과 후배가 나에게 했던 "하객이 적으면 능력 없는 사람으로 보이잖아요."라는 말처럼 하객이 많아야 신랑 신부가 사회생활 잘하고 예식장이 하객들로 가득 차야 행복한 결혼식으로 생각하는 편견 때문이다.


단 하루인 결혼식을 위해 목적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그 무의미한 일회성 관계를 위해 인생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 낭비, 감정 낭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 후배가 대학교 내내 과 동기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참고 있던 것처럼 말이다.



목적이 있는 인간관계의 끝


사실 결혼 이후 확 변해 버린 몇몇 지인이 있다. 항상 모임을 주도하고 적어도 분기별로 한 번씩은 만나야 한다고 외쳤던 그 사람은 본인 결혼 이후 단톡 방에서 쏙 자취를 감췄다. 이후에는 어느 누구의 경조사에서도 그를 볼 수 없었다.


‘목적이 있는 관계였구나.’라는 걸 알게 되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참 부지런히 결혼식에 참석했고 그 이후 목적이 있는 인간관계는 대부분 정리되었다. 그때 건넨 축의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과 추억들이 나 혼자만의 진심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결혼이라는 사건을 통해 많은 인간관계들이 정리되었다. 너무 많은 인맥들 사이에서 정신없어하던 나의 옛 모습을 돌이켜보면 어차피 언젠가는 겪어야만 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나는 오늘도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하객의 많고 적음, 화환의 유무에는 관심 갖지 않고 신랑에게 ‘축하한다’는 진심 가득 담긴 한마디와 함께 악수를 건넬 것이다. 하객의 많고 적음으로 신랑 신부의 능력을 평가하고 이로 인해 당사자들이 스트레스받고 하객 알바까지 고민해야 하는 잘못된 결혼 문화가 빨리 사라지길 바라본다.

날씨가 너무 좋았던 4월의 어느 날 명동 성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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