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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Mar 11. 2020

집돌이가 재택근무를 싫어하는 이유

내가 사무실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집돌이인 나는 주말에 이틀 중 하루는 꼭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에게는 밖에서 쇼핑을 하거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핫플레이스에 가는 게 쉼이라면, 나에게 쉼은 나만의 공간인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재택근무를 한지 이 주째, 집돌이인 나는 과연 재택근무에 만족하고 있을까?


나만의 공간에서 일을 한다는 것


회사에 대한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때가 있었다. 부서가 통폐합되고 많은 사람들이 퇴사하면서 3명의 업무량을 감당해야만 했다. 내가 있던 층에서 늘 제일 늦게 퇴근을 했지만 업무량이 많았던 만큼 업무 사고도 많았고 사고 때문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내 자존감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내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보다 못한 옆 부서 대리님이 조언을 해주셨다.


"얼굴 좀 풀어요. 무슨 세상 걱정 근심 다 짊어진 표정이네. 집에 가서도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제대로 못 쉬죠? 회사에서 욕 먹는다고 해서 OO 씨 삶 전체가 무너지면 안 돼요. 회사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는 철저하게 별개입니다. 영혼은 집에 두고 출근한다고 생각하세요. 회사에서 혼나도 괜찮아요."


나는 이 분의 말이 너무나 힐링이 되었다. 그 전에는 퇴근 이후에도 집에 노트북을 싸들고 가서 일을 하기도 했었지만 (물론 집중해서 일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후로는 일과 쉼을 철저하게 구분하기로 결심했다. 퇴근 이후에는 급한 일이 아니고선 절대 노트북을 켜지도 않고 아웃룩도 체크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쓸데없이 업무 걱정을 집에 안고 들어와 끙끙대고 심지어 잘 때도 회사 일로 악몽을 꾸기도 했지만 확실한 쉼이 보장 되면서 업무 집중도는 더 높아졌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나의 이런 삶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 공간인 집에서 일을 해야 하고 아웃룩을 체크해야 한다는 것. 일과 쉼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예전에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족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내 모습


사회 초년생 때 주말에 업무 건으로 인해 협력 부서와 목소리를 높여가며 전화로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집에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방에 들어가서 통화를 했지만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부모님도 대충 상황을 짐작하셨다. 전화를 끊고 거실로 나왔을 때 어머니의 눈빛이 기억난다. 그 전에는 한 번도 나의 화난 모습을 본 적 없던 어머니였기에 놀라신 것 같았고 사회인이 되어 일의 중압감을 견뎌야 하는 자식이 안쓰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게 부모님 앞에서 업무적으로 통화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결혼해서 와이프와 살고 있고 와이프도 재택근무 중이라 둘 다 집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집에서 각자 업무를 하다 보면 얘기하지도 않아도 상대방이 받는 업무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방에서 화상 회의를 끝내고 나오는 와이프의 심각한 표정을 볼 때면 사회 초년생 때 나를 보던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운 우리의 일상들


물론 코로나 19의 확산을 방지하고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재택근무라지만 썩 달갑지는 않다. 집과는 철저하게 분리된 회사라는 공간에서만 일을 하고 그곳에 스트레스를 묻어 두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하고 싶다.


코로나 19로 인해 그동안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마스크 없이 지하철을 타는 것, 영화관에 가는 것,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 있게 책을 읽는 것 등등. 심지어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까지도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루 빨리 나의 소중한 일상들을 다시 누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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