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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Apr 08. 2020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핑계

원래부터 그런 사람 이런 건 없습니다

[사진출처: unsplash@mattia19]


군대에 있을 때 선임 한 명은 유독 감정 기복이 심했다. 오전에 "네가 친동생처럼 느껴진다. 너도 군대에서 친형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내 앞에서는 긴장 풀고 좀 웃어.”라고 하더니 오후에는 “야 웃냐? 군생활 편하냐?"라고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원래 좀 지랄 맞은 성격이라서 그래. 네가 좀 이해해줘라.”


라고 말하곤 했다. 그 선임의 감정 기복에 질린 나는 얼마 가지 않아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고 군생활 내내 그와 마음의 벽을 쌓고 지냈다. 그에게 약점 잡힐만한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훈련, 내무생활 모두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했다.


수많은 '원래 그런 사람들'

 

나는 그 이후에도 여러 명의 '원래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대학교 친구 한 명은 늘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셋이 치킨을 먹으러 가서 진리의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주문하려고 했지만 그 친구는 후라이드 한 마리를 고집했다.


"얘네들 뭘 모르네. 야 너네 여기 처음 와봤어? 이 집은 무조건 후라이드지."


우리가 후라이드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그의 고집에 질린 우리는 그가 원하는 대로 후라이드 한 마리를 시켰고 그제야 그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원래 고집이 세거든. 최 씨 고집 유명하잖아.”


나도 '원래 그런 사람'이 되기로 했다


회사 선배 한 명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종종 내 기분을 긁어놓고는 “내가 원래 솔직한 타입이라서 그래. 악감정은 없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면서 뻔뻔하게 행동했다. 하루는 선배와 취미에 관해 얘기하게 되었는데


선배: “쉬는 날은 보통 뭐해?”

: “글 쓰는 게 취미라 틈틈이 에세이 씁니다.”

선배:  “왜 그런 걸 하는 거야? 남자라면 나처럼 사회인 야구나 테니스 동호회처럼 활동적인 걸 해야지."

: “사람마다 취미가 다르죠. 쓴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해요. 구독해 주시는 분도 있고요.”

선배: “야 네가 쓴 글을 읽는 사람도 있어? 글 쓰는 너도 이해할 수 없지만 네 글을 읽는 사람은 더 이해가 안 간다."


자리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원래 그런 사람들'을 만났던 걸까? 왜 그들은 저렇게 당당한 걸까? 나도 이제 그들에게는 '원래 그런 사람'이 되기로 했다.


"친한 사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은 지켜야죠. 만약 제가 '왜 사회인 야구하세요? 실력도 없는 아마추어들끼리 돈 내서 유니폼까지 맞춰 입고 공놀이 하는 걸 이해할 수가 없네요.'라고 말한다면 기분 좋으세요? 제가 원래 솔직한 타입이라서요. 앞으로도 선배랑 잘 지내고 싶어서 솔직히 얘기하는 거니까 선배가 이해해줘요. 기분 상해하지 마시고요"


그 선배는 바로 미안하다고 했고 그 이후부터는 내 앞에서 언행을 조심하는 게 느껴졌다. 사실 그 선배는 솔직한 타입이 아니라 눈치가 부족한 타입이었고 가끔 실언을 내뱉어 주위를 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제가 원래 솔직한 타입이라서요.'라는 말로 본인의 실수를 포장하려고 했다.


핑계에 불과한 말


우리는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때론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 관계에 금이 가고 자책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도 인간관계는 어렵고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제가 원래 이런 사람 이라서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단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선의 노력을 안 하는 사람들이었다. 본인의 성격에 문제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알면서도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핑계로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관계란 상대방을 배려해야만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저 상대방이 나에게 맞춰주기만을 바란다면 결국에는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쩌면 ‘원래 그런 사람들’이 내게 저런 말을 했던 건  ‘나 이런 사람이니까 네가 알아서 참고 맞춰주던가 아니면 관계를 끊던가.’라는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었을까? 인간관계에 있어 이기적인 사람과는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결국 내가 저 수많은 ‘원래 그런 사람들’과 대부분 연락이 끊긴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감정 낭비를 하지 않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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