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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미술, 체육, 음악 등 여러 과목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반 친구들의 실력을 비교하게 되었다. 운동신경이 없던 나는 체육시간에는 주눅 들어 있었고 미술시간에는 짝꿍의 뛰어난 그림실력을 보면서 평범한 내 그림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한 분야에 뛰어난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의 재능이 부럽기도 하고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 열등감이 극에 달한 사건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있었던 글라이더 (고무 동력기) 만들기였다. 손재주가 없는 나에게는 처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정신없이 만들다 보니 날개는 휘어있었고 딱 봐도 좌우 대칭이 전혀 안 맞았다. 반면 한 친구의 글라이더는 완벽한 모습 그 자체였다.
이 과제의 대미는 반 친구들 모두 완성된 글라이더를 들고 운동장에 나가 다 같이 날리는 것이다. 25명 남짓한 남학생들이 운동장에 일렬로 서서 고무줄을 감고 긴장된 모습으로 운동장 끝에 서서 선생님의 지시와 함께 일제히 글라이더를 날린다.
‘휭~ 뚝’
역시 내 글라이더는 몇 미터 날아가지 못하고 곧 땅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반면 완벽한 형체였던 그 친구의 글라이더는 하늘 높이 그리고 우아하게 비행을 했다. ‘와-‘하는 반 친구들의 탄성과 함께 그 친구의 어깨는 한없이 높아져 있었고, 반면 내 자존감은 땅바닥에 추락한 글라이더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 나는 뭐든 재능이 없나 보다. 그냥 대충 하지 뭐.’
그로부터 몇 개월 후, 학교에서 통일을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가 열렸고 역시 나는 대충 써서 냈다.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치지만 당시 적잖은 통일 후유증을 겪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가 제대로 통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수상자가 발표되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일등이었다. 반 친구들의 ‘우와’하는 함성소리 그리고 처음으로 반에서 1등을 했다는 것이 나의 자존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그때부터 글쓰기는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나를 지탱해 주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중고등학생 썼던 일기, 군대에서 쓴 수양록 (일기), 직장 생활하면서 쓴 에세이 등등. 방식은 다르지만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써 나아갔다.
내 글을 세상에 공개하는 순간
그때까지의 글쓰기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나만 간직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회사 근처에서 글쓰기 수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수업은 30분 동안 강사님의 설명을 듣고 30분 동안 각자 글을 쓴 후 각자 쓴 글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가장 긴장되는 시간은 역시 내 글을 다른 사람에게 오픈하는 것이었다. 총 10명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오롯이 나만 간직하던 글을 이제 남에게 공유한다는 사실이 나를 긴장시켰다. 첫 글의 주제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떨리는 피드백의 순간이 왔다.
“정말 에세이 쓰신 거 맞죠? 수능 비문학 지문 같아요.”
내 첫 글에 대한 피드백은 처참했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거의 없었다. 반면 다른 분들의 글은 나와는 수준이 달랐다. 다들 글 좀 써본 실력이었다.
계속 혼자만의 글쓰기를 했다면 이렇게 비교당할 일도 없고 상처 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괜히 수업을 신청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용기 내어 계속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 미술과 글라이더 만들기는 못했지만 글쓰기에서 상을 받았던 것처럼 오늘 쓴 글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나만의 강점이 있는 주제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다음 주는 인간관계에 관한 글을 썼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건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담담하게 적어냈다. 여러 명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중 한 분이 “퇴근길에 이 글을 브런치에서 읽었다면 큰 힐링이 되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해주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다
내 글이 누군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슴 뛰게 만들었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인간관계, 영화 리뷰, 음악 리뷰를 각각 한 편씩 써서 여러 차례 퇴고를 반복하고 적당한 이미지와 구분선까지 넣어가며 열심히 꾸몄고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하필 그다음 날부터 추석 연휴라 연휴 기간 동안 브런치 작가 합격수기, 불합격 수기를 읽으며 초조함을 달랬다. 합격수기를 읽을 땐 그들의 성취가 부럽기도 했고 불합격 수기를 읽을 때는 그들의 좌절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했다.
5일 정도 지난 후 처음으로 브런치 앱의 알람이 울렸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확인을 해보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작은 시작이지만 내 글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브런치 작가를 준비하면서 내 가슴 한 구석에 잠들고 있던 열정이 다시 깨어난 것을 느꼈다. 회사와 집 외에는 특별한 게 없는 30대 후반의 나는 어제와 오늘이 같고 작년과 올해가 같은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 지내고 있었다. 새롭게 도전한다는 것 그리고 브런치 작가라는 작은 성취감은 어린 시절 글쓰기를 통해 느꼈던 기쁨과 열정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지금까지 40편 정도의 글을 올렸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담담하게 적어 올렸고 그중 일부는 다음 메인에 뜨면서 예상하지 못한 조회수가 나오기도 했다. 인간관계로 상처 받았던 분들이 힐링이 되었다고 얘기하거나 지금까지의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댓글을 달아준 분도 있었다.
나에게 있어 브런치는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장 끝에 서서 글라이더를 만들어 날렸던 것처럼 긴장과 설렘의 마음을 담아 발행 버튼을 누른다. 얼마 가지 않아 뚝 떨어져 버린 내 어린 시절의 글라이더와 달리 내 브런치는 훨훨 날아 여러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작은 메시지가 다른 분들에게 힐링이 되거나 울림을 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