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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Apr 30. 2020

나의 장롱 면허 탈출기

[이미지출처:unsplash@danielcgold]


나는 20년 무사고 운전자다. 하지만 이 20년이라는 숫자에는 함정이 있다. 그건 바로 17년 동안은 아예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부모님은 “면허는 시간 날 때 따놓아야 해.” 라며 나를 재촉하셨고 성화에 못 이겨 바로 운전면허를 땄다. 문제는 부모님이 그 이후 나에게 차 키를 넘겨주지 않았다는 것. 원래 걱정이 많은 부모님은 “면허는 땄지만 아직 운전이 서투니 절대 어디 가서 운전하면 안 된다.”라며 겁을 주셨고, 부모님을 닮아 걱정이 많은 나 역시 운전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그 이후 군대, 중국 유학, 대학원으로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고,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면허를 딴지 10년이 지나니 면허를 갱신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면허증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지갑에 면허증을 안 넣어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너 면허증 안방 장롱 서랍에 있어. 이사할 때 굴러다니길래 엄마가 거기 보관했어.”

장롱면허라는 단어의 어원 역시 이렇게 탄생하게 된 걸까?


그 이후 취업에 성공했고 정신없이 직장 생활하다 보니 면허 딴지 12년이 지났고, 운전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길거리의 수많은 자동차들을 보면서 '저 많은 사람들이 운전을 할 줄 아는데 왜 나는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꿈에서도 운전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서 급하게 운전을 할 일이 생겨 운전대를 잡았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식은땀을 삐질 흘리는 그런 꿈 말이다. 12년 전에는 절대 운전을 하지 말라던 부모님은 이제 "운전 언제 배울 거니?"라며 다시금 재촉하기 시작했다. 운전연수를 받으려고 고민하던 그 시점에 갑자기 해외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곳이 베트남이었다는 것. 베트남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엄청난 오토바이의 행렬에 혀를 내두르고 만다. 아무런 의미기 없는 차선, 무수히 많은 오토바이의 곡예 운전을 보면서 베트남에서 운전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매일 차를 타고 3시간씩 출퇴근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교통사고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운전에 대한 공포심은 더 커져만 갔다.


그 이후 파견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 후 결혼을 했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무사고 운전 17년 차가 되었다. 가끔 회사에서 워크숍을 갈 때면 회사분들이 내 차를 얻어 탈 수 있는지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저 차 없어요." 혹은 "제가 운전을 못해서요."라는 말을 하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운전을 못하다는 사실에 그들은 적잖이 놀란듯했다. (사실 나를 거의 외계인 취급했다.)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운전대의 감촉, 생각도 나지 않는 평행 주차 방법, 17년이 지나면 정말 엑셀/브레이크/클러치 (또 남자라고 1종 보통을 땄다)의 위치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었다. 나에게 운전은 인생의 커다란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전을 배우기로 결심한 사건이 발생한다. 회사 동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 가게 되었고, 결혼식이 끝나고 동기들과 해운대에 놀러 가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너무나 화창한 날씨, 오랜만에 여행을 왔다는 설렘,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들, 모든 것이 너무나 좋았다. 해운대에 가서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찰나


'쾅'


엄청난 충격이 우리를 덮쳤다. 누군가 내 머리를 둔기로 세게 내려친 것 같은 충격이었다. 추돌사고였고 너무 세게 부딪혔기에 택시 기사님과 동기들 모두 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우리가 탄 택시는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뒤에서 차가 너무 세게 부딪혔기에 나는 순간 사고차량의 운전자가 운전미숙으로 엑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했음을 직감했다. 아니다 다를까 잠시 어쩔 줄 몰라하는 20대 중반의 청년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죄송해요. 제가 초보라서 실수로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았어요."라고 했다. 다른 동기들은 어떻게 엑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릴 수 있냐며  어처구니없어했지만 나는 혼자 속으로 '근데 나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서울로 올라와서 두 달간 치료를 받고 보험사와 합의를 하면서 사고는 일단락되었다. 신기한 건 사고, 병원 치료, 보험처리의 프로세스를 겪고 나니 운전에 대한 공포심이 사라졌다. 그 전에는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컸지만 이 과정을 겪고 나니 '아 이렇게 해결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다음 주에 운전연수를 신청해서 17년 만에 운전대에 앉게 되었다. 오랜만에 운전대에 앉으니 많은 감정들이 밀려왔다. 운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부러워했던 것, 워크숍 갈 때 조수석에 앉아 가면서 느꼈던 미안함, 가끔 꾸던 운전을 하는 악몽의 기억들. 이제 이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모든 것이 낯설고 가끔 급정거도 하고 신호를 제대로 보지 못해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17년 만의 운전은 별 탈 없이 끝났다. 운전하면서 본 백미러에 비친 내 모습은 걱정보다는 설렘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나를 짓누르던 인생의 커다란 숙제가 끝이 났다.


결국 새로운 일에 성공하는 방법은 바로 실패를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선배 한 분은 "원래 사고 많이 쳐본 사람이 결국에는 더 성장하는 법이에요. 사고를 경험하고 나면 한 가지의 해결방법을 배우게 되거든요." 나는 그 선배의 말이 무척이나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많은 실패를 하며 살아간다. 때론 스스로 자책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패 역시 성공의 일부이다. 용감하게 도전했다는 사실,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 일어서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 모두 칭찬받아 마땅한 성공인 것이다. 혹시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실패해도 괜찮아요. 실패도 성공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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