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unsplash@Matheus Ferrero]
전에 쓴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라는 글에 한 작가님이 댓글을 남겨 주셨다.
https://brunch.co.kr/@essay4healing/135
“나이에 따라 주어지는 삶이 있잖아요. 그때는 그 삶에 충실했고, 지금은 현재의 삶 그리고 인간관계에 충실하게 사는 게 인생 아닐까요?”
작가님의 댓글을 읽고 나이에 따라 변하는 친구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10대: 함께 성장하는 관계
10대에는 친구와 함께 성장하는 시기였다. 친구의 장점을 보고 배우기도 하고 단점을 발견했을 때는 따끔한 충고도 해주며 서로를 반면교사 삼아 성장해 나아갔다. 친구가 공부를 하면 나도 자극받아 더 열심히 하기도 했다.
가끔은 서툰 감정표현으로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도 있었다. 각자 응원하는 축구팀이 더 낫다고 하루 종일 말다툼을 하거나 농구할 때는 승부욕을 주체하지 못해 감정싸움을 하기도 했다. 여러 번의 다툼과 화해를 통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성숙해져 갔다.
20대: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
20대에는 친구가 내 인생의 1순위였다. 친구와의 관계에 따라 내 행복지수가 결정되었고, 부모님에게는 말 못 할 고민도 친구에게는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었을 정도로 서로 많이 의지하며 지냈다. 연애 때문에 잠시 소원해지는 시기가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사랑은 떠나도 친구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실연을 당하면 친구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묵묵히 내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그럴수록 서로의 우정은 더 두터워져 갔다.
이 시기에는 나와 친구의 경계가 없다시피 했다. 자취하는 친구가 있으면 주말에 그 친구 집에 모여 밤새 술을 마시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자취방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주기도 했었고, 이렇게 우리는 시간, 마음, 공간의 경계 없이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였다.
30대: 적절한 거리 유지하기
10,20대에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었다면 30대부터는 친구와 적절한 거리 유지하기를 배웠다.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기 시작했고 친구의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친구와 둘만 시간이 맞으면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각자 가족들의 스케줄에 맞춰야만 했다. 싱글인 친구들은 결혼한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에 섭섭해했지만 우린 이 새로운 룰에 적응해야 했다.
얼마 전 마트에서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4명이 함께 온 것을 보았는데 카트에 가득 담긴 과자와 음식들을 보니 오늘 누군가의 집에 모여 밤새 파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중 두 명은 어떤 술을 사는 게 좋을지 한창 논쟁 중이었다. 서로 술 마신 경험을 얘기하며 본인이 추천하는 술이 더 낫다고 우겨댔고 나머지 2명은 늘 있는 일이라는 것처럼 체념한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딱 나와 친구들의 10년 전 모습이 떠올랐다. 그 친구들과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다. 이제는 성숙해져서 서로를 배려하고 더 이상 티격태격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감정 표현에 서툴고 친구들과 티격태격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40대의 우정이란?
나에겐 곧 다가올 40대의 우정은 어떨까? 40대 친구의 역할은 멀리서 응원하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더 치열해지는 직장 내의 경쟁과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가족들. 40대에는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줄어들 것이고 어쩌면 친구와 가장 멀어지는 시기일 수도 있다.
한 때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섭섭한 마음은 접어두고 멀리서 친구들을 응원해 주기로 했다. 예전처럼 우리가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끔 전하는 목소리나 메시지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치열한 시기가 지나 직장에서 은퇴하고 자녀들도 다 자라 더 이상 우리의 손길이 필요 없는 시기가 오면 다시 친구가 인생의 1순위가 되지 않을까? 그때는 지금과 같은 젊음도 밤새 술 마실 체력도 없겠지만 우리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