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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May 11. 2020

어른이 된다는 건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

[사진출처: unsplash@kellysikkema]


어렸을 때 내가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은 게임기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30년 전에도 게임기의 가격은 지금과 비슷한 30만 원 정도였고, 게임팩은 지금 보다 더 비싼 10만 원 정도였다. 게임기 하나만 갖고 있어도 부자라는 얘기를 듣던 시기였는데, 반 친구 중 한 명은 무려 3대나 갖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부자처럼 보였고 반 친구들 모두 그 친구를 부러워했다.


성인이 된 지금 나는 이미 2대의 게임기를 갖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매달 한 대씩 추가로 살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30대 후반이 된 나에게 서울 아파트와 외제차 정도는 있어야 부자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소형 SUV를 몰고 다니는 나에게 회사 동료 한 분은 “그 나이에 최소 소나타 정도는 몰아야지.” 라며 본인들만의 잣대를 들이댔다.


문득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이 생각났다. 이미 대학교를 졸업했고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릴 수가 없어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다. 호주의 생활비는 생각보다 비쌌고, 450불의 월세를 내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늘 PB 브랜드 (이마트의 노브랜드와 같은) 빵과 우유를 마시며 생활해야만 했고, 한 끼에 80불 가까이 드는 외식은 꿈도 꾸지 못했고 카페 역시 거의 가보지 못했다. 6개월 동안 스타벅스를 딱 2번 갔었는데 그때 마신 음료가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10년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마신 메뉴를 기억하고 있다. 한 번은 아이스 카페모카 (휘핑 얹어서) 한 번은 차이 티라테였다.


회사원이 된 지금 매일 세 잔의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며, 카카오톡 선물함에는 아직 쓰지 않은 스타벅스 기프티콘이 가득 쌓여 있다. 하지만 왜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고 느끼고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한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걸까? 결국은 회사 지인이 얘기한 “그 나이에 최소 소나타 정도는 몰아야지.”처럼 세상이 정한 부자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분의 어릴 적 부자의 기준이 무엇인지 한 번 떠올려보자. 대부분은 아마 그 부자의 기준을 달성했을 것이고 누군가의 시선에는 우리 모두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잠시라도 세상이 정한 부자라는 기준에서 벗어나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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