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unsplash@lycs]
오전 8시 5분 인사발령 메일이 왔다. 순간 사무실 전체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당사자들은 이미 면담을 통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소식이 빠른 사람들은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공식적인 메일은 또 다르다.
‘잔인하다.’
메일에 있는 명단을 보며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오래전부터 함께 일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래전 한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회사는 감정을 못 느껴. 회사가 따뜻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 회사는 냉정하다 못해 아예 감정이 없으니까. 그냥 무생물이야.”
코로나 19로 인해 매출이 반토막이 아니라 아예 1/4 토막이 났고, 3개월 내내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을 했다. 누구나 예상했던 구조조정이지만 회사가 직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진절머리가 났다. 오랜 기간 회사에 충성을 다했던 직원, 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그저 최대한 직원을 해고해 인건비를 줄이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직원이 받는 상처 따위는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한때는 회사에 충성을 다 한 적이 있었다. ‘회사의 미래 = 나의 미래’라는 생각으로 하루 14시간씩 일하는 것도 모자라 주말에도 자진해서 출근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깨닫게 되었다.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고 회사의 미래와 나의 미래는 다르다는 것을.
어느덧 입사한 지 10년이 되었고, 서서히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떤 생각이 들까? 그래도 신입사원인 나를 받아주고 업무도 가르쳐주고 학자금 대출도 갚게 해 준 고마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까 아니면 이 곳에서 바친 내 청춘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까?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철저히 회사와 나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아예 업무를 하지 않고 재테크 공부나 책을 읽으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 ‘이렇게 하면 내 차례가 왔을 때 조금은 마음의 상처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회사에서 상처 받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업무에 임한다. 오래전 선배가 말했던 ‘회사는 감정을 못 느껴.’라는 말을 되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