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유형과 대처법
[사진출처: tvN 드라마 ‘미생’]
사회생활 10년 동안 여러 명의 꼰대들을 만났다. 내가 만난 꼰대들은 대개 ‘상명하복 사고방식’과 ‘나 때는 말이야’ 두 가지 유형이었다.
유형 1. 상명하복 사고방식
인턴 때 팀장님은 밤 10시에도 팀원들을 불러냈다. “나 여기 성수역 치킨집에 혼자 앉아 있어. 누가 제일 빨리 찾아오나 볼게. 나 힌트 많이 줬다."
문제는 정확한 상호명과 위치를 안 알려 준다는 것. 그럼 나와 동기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성수역 부근 치킨집을 뒤져서 팀장님을 찾아냈다. 그에게는 이 집합이 일종의 충성도 테스트였고, 얼마나 부하 직원들이 내 말을 잘 듣는지 알고 싶었던 것 같았다. 결국 그의 갑질과 꼰대질에 질린 나는 정해진 인턴기간인 2개월만 채우고 나왔다.
다시 6개월 간의 취준생 생활을 거쳐 취업에 성공했고 신입 교육을 끝내고 부서에 배치받았다. 좋은 상사를 만나기를 바랐건만 두 번째 팀장 역시 비슷한 유형의 꼰대였다. 그는 본인 기분이 안 좋거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OO 씨 바빠 보이시네요. 오늘은 점심 굶고 일하세요." 라면서 내 점심시간을 맘대로 통제했다. 아마도 나를 마음대로 컨트롤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업무 스트레스를 푸는 것만 같았다.
유형 2. '나 때는 말이야'형
1년 반 만에 부서이동을 했지만 세 번째 만난 팀장님은 요즘 핫한 '나 때는 말이야' 형이었다. 매일 나를 불러 2시간씩 “나 때는 말이야 일 많으면 회사에서 밤새 일하고 선배들이랑 사우나 가서 잠깐 눈만 붙이고 나와서 일했어.” 라며 설교를 늘어놓았다. 옛날 회사생활이 좋았다는 등 지금 신입들은 그때와 같은 열정이 없다는 등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그는 회사 내에 딱히 친한 사람이 없어 보였고 늘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았다. 한참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현업을 배워야 할 시기에 매일 2시간씩 똑같은 얘기를 들으며 시간을 허비했다.
Q. 나는 왜 계속 꼰대들을 만나게 된 걸까?
A. 너무 예스맨(Yes Man)이라서
네 번째, 다섯 번째도 회사에서 유명한 꼰대들만 만나게 되었다. '내가 전생에 노비를 괴롭혔던 아주 악랄한 양반이어서 현생에서 이런 불행을 겪나 보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 나는 계속 꼰대를 만나게 된 걸까? 인턴 때 만난 팀장과 이 회사의 첫 번째 팀장은 랜덤이라고 해도 그 이후에는 소위 팀장들의 '간택'으로 팀을 이동했기 때문에 뭔가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너무나 예스맨이었다. 어떻게 예스맨이 된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착하게 살아라.'라고 강요해서 생긴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일까? 꼬인 군생활 때문에 병장이 되고 나서도 후임보다 선임이 많아 리더십보다는 팔로워십을 습득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신입 때부터 너무나 예스맨이었고 꼰대 팀장들이 나를 본인 팀으로 데려온 건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들의 선택을 따를 수 있는 예스맨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 팀장님은 전시회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회사지만 부서가 달라 그 전에는 본 적 없던 선배였다. 서로 회사를 소개하고 나서야 회사 선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분은 처음 만난 나에게 따로 커피를 마시자고 하더니 1시간 동안 회사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충고를 해주셨다. 그때 만약 "저는 지금도 회사생활 잘하고 있기 때문에 충고는 필요 없습니다."라고 되바라지게 행동했다면 내 현재는 바뀌어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예스맨인 나는 1시간 동안 "네. 넵. 아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등의 적당한 리액션을 하면서 충고를 들었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님의 달갑지 않은 러브콜을 받았다.
대처법 1. 개인적인 친분 쌓지 말 것
상명하복형의 상사와 사적인 술자리도 갖고 개인적인 친분을 쌓게 되었다. 사실 의도성이 짙은 친분이었다. 친해지면 회사생활이 편해지고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친분이 쌓일수록 더 힘들어져 갔다. 밤에도 수많은 술자리에 불려 다녔고, 무엇보다 친해지고 나니 나를 더 막 대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 앞에서 '이 녀석, 이 자식' 등의 호칭으로 불렀다. 마치 다른 사람 앞에서 '내가 이렇게 후배들을 꽉 잡는 사람이야'라는 걸 자랑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꼰대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은 건 내 실수였다.
대처법 2. 적당히만 맞춰줄 것
매일 2시간씩 설교를 했던 팀장님과 일할 때, 부서 내에 나와 비슷한 기수의 사람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항상 팀장님 설교 도중에 항상 (갑자기 전화를 받으며) “네 사장님. 회사 도착하셨다고요? 지금 내려가겠습니다.” 라면서 자리를 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설교가 시작되면 업체 사장님들에게 '10분 후에 전화 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또 다른 한 명은 설교가 끝나면 “힘들어서 회사 그만 다니고 싶습니다.” 라면서 우는 소리를 했다. 팀장님이 1시간 설교하면 본인도 힘들다는 소리를 1시간 동안 했다. 그럼 7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두 사람은 여전히 회사에 잘 다니고 있고 꼰대 팀장님은 오래전에 퇴사했다. 비상식적인 꼰대 상사에게 너무 맞춰줄 필요는 없다.
융통성 있게 대처한 2명과 달리 나는 항상 열심히 설교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나 때는 말이야'의 설교형 꼰대들은 타깃을 정해 놓고 특정인을 괴롭혔고 결국 융통성 없는 내가 타깃이 되었던 것이다. 꼰대에게 너무 맞춰줄 필요는 없다. 적당히 맞춰주고 적당한 시기에 설교를 끊어낼 수 있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대처법 3. 적당히 노맨(No Man)으로 살 것
여러 명의 꼰대들을 경험하고 나서 나는 적당히 노맨 (No Man)으로 살기로 했다. 물론 대부분의 팀장들은 본인 말에 순종할 수 있는 예스맨을 원하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예스맨으로 지내게 될 때 얻는 득 보다 실이 더 많다는 것을 느꼈다. IMF 이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고 더 이상 한 회사에만 충성하는 게 미덕이 아닌 지금, 예스맨은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상사와 나 둘 중 한 명이 언제 퇴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지금의 상사에게 너무 충성할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라는 지랄 총량의 법칙처럼 '한 사람이 살면서 평생 만나게 되는 꼰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라는 꼰대 총량의 법칙이란 것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꼰대들은 만나지 않을 테니까. 안녕 나의 지난 꼰대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