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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Dec 26. 2019

<봄날은 간다>에서 ‘라면 먹을래요?’만 기억 난다면

라면의 여러가지 의미

영화 <봄날은 간다>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유행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 라면은 스토리 진행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생라면=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라면은 바로 생라면이다. 이영애 (극 중 은수)는 유지태 (극 중 상우)의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 가려다 용기를 내어 ”라면 먹을래요?”라며 묻는다. 둘은 은수의 집에 들어가 뻘쭘하게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은수가 라면을 끓이며 “자고 갈래요”라고 묻는다. 이때 은수는 생라면을 한 입 깨문다. 아무런 조리도 하지 않은 생라면은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감정에 충실한 상태를 표현한다.


떡라면=자기의 욕심대로 바꾸려는 

그다음에 등장하는 라면은 개인의 취향이 들어간 떡라면이다. 둘의 연애가 어느 정도 진전 된 후, 상우가 "무슨 라면?"이라고 묻자 은수는 "오늘은 떡라면. 김치도 넣어.”라고 대답한다. 남녀 간의 연애가 시작되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점점 본인의 욕심대로 상대방을 바꾸려 하기 시작하고 여기서 갈등이 생긴다. 은수 역시 처음에는 상우의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했지만, 본인이 연애를 주도하고 본인의 욕심대로 상우를 바꾸려고 든다. 떡라면을 요구하는 건 은수가 이제 이 연애를 본인의 욕심대로 주도하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김치=결혼

상우는 은수와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어 한다. 라면을 먹다 상우가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다.


상우: "만나는 사람 있으면 아버지가 데려오래"

은수: "상우씨 나 김치 못 담가.”

상우: "내가 담가 줄게.”


라면은 3~4분이면 조리가 완성되는 인스턴트 음식이지만 김치는 그렇지 않다.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고 발효시키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라면은 둘의 힘으로 쉽게 끓일 수 있지만, 김치는 그렇지 않다. 둘만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고 가족들과 함께 김장을 해야 한다. '긴 시간', '가족' 이 두 가지 키워드에서 김치는 곧 결혼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면=인스턴트식 만남

은수에게 있어 상우는 그저 라면일 뿐이다. 인스턴트 음식인 라면처럼 둘의 관계는 인스턴트식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약속이 있어 나간다는 상우에게 은수는 "무슨 약속? 빨리 들어와서 라면이나 끓여"라고 얘기하고, 이런 은수에게 상우는 "은수씨 말조심해 내가 라면으로 보여?"라고 화를 낸다. 하지만 은수에게 있어 상우는 라면이 맞다. 은수는 이 만남을 가볍게 생각하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지 않는다


커피=각자의 취향대로 마실 수 있는 음료

둘이 헤어진 후 함께 마시게 되는 건 커피다. 이제 남이 된 둘은 오롯이 각자의 취향대로 마실 수 있는 커피라는 음식을 선택한다. 남녀가 땀을 흘리며 '후후' 불어가며 먹는 라면이 상대방과의 마음의 거리를 좁혀지게 하는 음식이라면, 커피는 철저히 상대방과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며 마실 수 있다. 둘은 시종일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커피를 마시고 카메라 앵글도 둘 사이의 거리감을 강조한다. 상우의 달콤했던 봄날도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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