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산들 Jun 08. 2020

짜장면도 한식인가요?

브런치의 한식 붐에 편승해서 쓰는 글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업에서 만나 친해진 한 중국인 유학생은 짜장면을 무척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점심 메뉴는 짜장면이었고 저녁에는 기숙사에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는다고 했다.


: 한국에 유학 왔으면 한국 음식 좀 먹어. 맨날 중국 음식만 먹지 말고.

중국인 유학생: 이거 중국 음식 아니에요. 한국 음식이에요.

: 짜장면이 무슨 한국 음식이야.

중국인 유학생: 중국에 이런 음식 없어요.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나는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북경의 한 음식점에 들어가 메뉴를 살피는데 세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 (자장미엔) 나와 친구들은 큰 기대를 하며 호기롭게 자장미엔을 주문했다. 하지만 잠시 후 나온 자장미엔은 우리의 기대감을 처참히 깨부수었다.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한국의 짜장면과는 달리 중국의 자장미엔은 누런 빛깔이었고, 한국 짜장면처럼 단맛을 상상했지만 중국의 자장미엔은 단맛이 전혀 없고 짜기만 했다. 나와 친구들은 모두 한 입만 먹고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누구의 음식도 아닌 짜장면


같은 문화권이자 인접 국가인 한국과 중국은 여러 가지를 놓고 싸운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고구려를 본인들 역사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김치가 중국 쓰촨 성의 요리 중 하나인 ‘쓰촨파오차이’에서 유래되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 서로 자기네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한국식 짜장면’이다. 이에 대해 짜장면은 어떻게 생각할까? 짜장면의 얘기를 들어보자.


저는 한국과 중국이 저를 놓고 싸우는 삼각관계가 될 줄 알았어요. 한국 드라마 보면 꼭 남자 2명이 여자 주인공 한 명을 놓고 싸우잖아요. 저도 한국과 중국이 저를 놓고 서로 자기네 거라고 싸울 줄 알았어요. 그래요. 삼각관계가 안 된 것까진 참을 수 있어요. 근데 뭐? 짬짜면? 참나 어이가 없어서. 한국 사람이 이렇게 대놓고 양다리를 걸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저는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완전히 제 모습을 바꿨어요. 중국의 자장미엔은 그저 면 위에 황두장을 부으면 끝이지만, 전 뜨거운 기름에 춘장을 볶아 만든답니다. 저를 한 번이라도 요리해본 사람이라면 제가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가끔 쓸데없는 거에 집착하더라고요. 저는 여러분들이 저를 자장면이라 부르던 짜장면이라 부르던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저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은 짜장면을 중국 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짜장면은 엄연한 한국 음식이다. 중국의 자장미엔에서 유래된 음식이라고 하나 맛과 조리법이 확연히 다르고 한국에만 존재하고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음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짜장면을 한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중국 음식이라고 여기고 있다.

중국 포털사이트에서도 '자장미엔'과 '한국식 짜장면’을 다른 음식으로 구분하고 있다. [출처: www.baidu.com]

짜장면에 담긴 추억들


내가 기억하는 첫 짜장면은 5살 때 먹은 짜장면이다. 전북의 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나는 5살 때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왔다. 갑자기 모든 짐을 큰 트럭 두 대에 나눠 싣고, 한 트럭의 조수석에는 아빠와 누나가, 나머지 한 트럭의 조수석에는 엄마와 내가 앉았다. 이사란 게 뭔지 제대로 몰랐던 나는 함께 지냈던 할머니와 사촌 누나들이 왜 그렇게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아침부터 우리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신나는 마음으로 커다란 트럭에 탔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자 낯선 건물과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의 아파트는 너무나 삭막했다. 사촌누나들과 뛰놀던 앞마당은 온데간데없고, 칙칙한 회색빛의 건물에 차가운 느낌의 대문까지. 나는 서울의 아파트가 너무 무서웠다.


낯선 환경에 나는 울음을 터트렸고 엄마는 어느 정도 짐 정리가 끝나자 짜장면을 시켜주셨다. 차디찬 바닥에 신문지만 깔고 앉은 채로 엄마는 정성껏 짜장면을 비벼 주셨고 나와 누나가 먹기 쉽도록 젓가락으로 X자를 만들면서 면을 반으로 잘라주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건 엄마만 구사할 줄 아는 스킬이었다.) 나는 이내 울음을 그치고 달짝지근한 짜장면을 누나와 함께 먹었다.

 

아픈 날 병원 갔다가 엄마와 단 둘이 먹은 짜장면, 졸업식날 가족들과 다 같이 먹은 짜장면, 군대 휴가 나와서 동기와 먹은 짜장면 등등. 누구나 짜장면에 대한 소중한 추억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소중한 음식인 짜장면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다. 짜장면이야 말로 우리에게 친숙하고 소중한 한국 음식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단합 대회하면 단합이 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