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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Apr 10. 2024

무의미의 춤

 나는 봄의 가운데에 서서 하루가 지나가는 모양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아침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는 동안 수많은 구름이 나를 지나갔습니다. 비행운 몇 점이 나를 할퀴는 동안에도 나는 당신의 테두리를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테두리는 하루가 지나가는 모양새와 닮아있었습니다. 애를 써도 붙잡히지 않는 무언가. 오늘의 물을 마시고 오늘의 고기를 먹는 동안에도 나는 어제의 절망과 내일의 황홀을 삼키곤 했는데요, 그것으로 오늘은 당신의 테두리를 그릴 수 있겠습니다. 먼지 속을 지나가는 구름처럼 희미함에 희미함을 더한 테두리. 그래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저녁은 가까스로 오늘을 삼켰습니다. 저녁이 미처 삼키지 못한 오늘은 석양으로 게워냈는데요, 헤어진 애인은 석양 속에서 헤어진 시간만큼 늙어있었습니다. 나는 저녁의 가운데에 서서 한때의 시간들을 석양처럼 게워냈습니다. 번져있는 석양에는 아무 윤곽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유원지에 다녀왔습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구불 구불 뻗어있는 도로에 차들이 한 가득 서 있었습니다. 차들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요. 기다림을 뚫고 다다른 곳에는 어떤 기다림이 남아있을까요. 만족은 기다림 끝에 오는 것이라지만 그들은 오늘을 만족할 수 있었을까요. 봄으로 가득찬 정오를 1차선 도로 위에서 보내는 하루를. 우리들 사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오늘을 다 살아낼 것 같습니다. 맴도는 말들을 다 삼키고 삼키지 못한 하루만 이렇게 내어놓습니다. 그것을 이렇게 부르기로 합니다. 당신의 테두리. 미처 의미를 지니지 못한 춤. 당신의 테두리. 당신의 테두리. 유원지로 가는 구불 구불 뻗어있는 길, 하늘에 떠가는 당신의 테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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