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서른 여덟 번 째 생일을 맞았다. 등산을 하다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 볼 때 느끼는 현기증처럼 서른 여덟 해나 살았다는 사실은 도윤에게 어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어지러움의 정체는 두려움이 조금 덮인 혐오스런 권태였다. 하루종일 햇볕을 본 자가 느끼는 두통처럼 적당히 긴 삶은 그에게 과잉의 일종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그는 앞으로의 삶에서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이제 비가 땅에 부딪히듯 당연스레 시간이 흐를 것이고 모든 것은 명백하게 흘러갈 것이다 – 그는 직감했다. 삶이라는 건,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기대하며 지나가고 2부는 기대를 접으며 지나간다. 이제 그는 1부를 마무리하고 2부를 맞이하는 중이었고 1부는 충분한 과잉이었다.
1부를 지나는 동안 도윤은 몇 번의 연인을 만들고 더 많은 남을 만들었다. 그 때마다 그는 환상통처럼 아팠다. 그에게 타인이란 그에게서 잘려 나간 마디 하나 같았다. 오랜 시간을 가져본 적 없는 것도 그리워했다. 가끔은 뜬 눈 앞으로 섯부른 밤이 지나갔다. 꿈을 꾸기도 했다. 함부로 사랑하는 꿈이었다. 꿈은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았음에도 그는 환상통을 겪었다. 타인이 하나 둘 늘어갈때마다 목적 없이 아팠다.
그는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카페나 술집을 좋아했다. 혼자 있어도 쫓겨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내 목소리만 들리는 것도 좋았고 넓은 공간을 혼자 훑어보는 것도 좋았다. 외로운 사업에 골몰하는 동안 방해받지 않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그런 공간은 촌스럽거나, 맛이 없거나, 외진 곳에 있거나, 주인이 괴팍하거나,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한 불편 대신 공백을 그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카페나 술집은 오래 이어지는 일이 없었다. 어느날 임대문의의 표지를 마주하면 그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했고 그 작업을 꽤 즐겼다. 장사가 되지 않음에도 꿋꿋하게 가게문을 여는 곳을 그는 좋아했다.
그는 혼자 살았다. 혼자 살아도 쫓겨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한 것인지, 좋아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좋았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그 또한 남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기는 매한가지였다. 인간사의 이런 불편 대신 그는 공백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삶을 계속해왔던 것이다. 무려 서른 여덟 해 동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