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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Apr 27. 2024

38세 이도윤 #2

 도윤은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한다는 건 일종의 마케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케팅.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무언가. 손쉽게 관심을 끌 만한 드라마의 주제. 도윤에게 사랑은 일종의 프로파간다였다. 그것이 서른여덟 살이 되는 동안 일종의 결말을 맺지 못한 도윤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마주한 사람의 얼굴을 보며 다시 생각해야 했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는 건 사람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겪는 일종의 이벤트다. 사람이 태어나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을 경험하듯 태어났으면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삶의 과정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박 대리가 갑자기 말을 거는 거야... 내가 어이가 없어서 빤히 쳐다보는데...”


 도윤은 그녀의 말을 배경음악처럼 들으며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퇴근 후의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도윤은 말솜씨가 부족하고 맛깔나게 연애하는 것에 능하지 않았으므로 편지를 썼다. 그는 어렸을 때 백일장에서 종종 상을 받곤 했다. 대상은 아니더라도 우수상은 몇 번 받아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다. 연애편지는 조금 자신이 있었다.


 ‘내가 다분히 경애하는 그대여. 당신을 알고 난 뒤부터 나의 사는 일은 그대를 기다리는 일과 그대를 만나는 일로 나뉘었습니다. 그대를 만나는 일만큼 그대를 기다리는 일도 나는 감사합니다. 내 모든 기다림으로 당신을 축복합니다...’     

 

 도윤은 기대와 묘한 안도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도 될까 하면서 몰래 훔쳐보는 성인잡지처럼, 도윤은 기대를 품고 미래를 바라보았다. 사전을 읽듯 당연한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도윤에겐 낯선 일이었다. 도윤은 이런 감정과 시간들이 자신에게 명백한 미래를 이끌고 오리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그녀의 친구들을 만난 일이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어디서 한 반쯤 본 가방을 들고 식당에 모였다. 도윤은 상상만으로도 힘이 빠졌지만 불평 없이 그녀의 말에 따랐다. 어렸을 때에도 도윤은 어머니의 계모임에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간 계모임이나 반상회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만히 얌전히 있으면 되었던 계모임과 달리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는 무언가 해야 했다. 그러니까 연기 같은 것을 해야 했다. 그녀를 위하고, 챙기고, 자상하고, 때로 멋지고, 유머러스하고, 여유 있고, 착하고, 장래를 생각하는 어떤 남자를 자연스럽게 연기해야 했다. 그게 가장 어려웠다. 도윤은 자리하는 동안 팬티만 입고 누워서 티브이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만 했다.     

 

 그래도 좋았다. 왜냐하면 이런 시간들의 끝에 도윤이 기다리는 미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시간은 참으면 되었다. 도윤은 고3 시절도 참고 군시절 2년을 참고 취업을 준비하던 2년을 참았다. 이 짧은 몇 번의 이벤트들이야 몇 번이고 참아낼 수 있었다. 물론 참아낸 다음 맞이한 미래가 늘 기대에 부응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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