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형욱 May 04. 2024

교향곡 1악장

 그 아이는 내가 본 것중 가장 사랑스러운 윤곽을 하고 있었다. 꽃향기를 좋아했다. 꽃이 번지듯 웃었다. 사랑스러운 것들을 잔뜩 뭉쳐놓으면 너의 모양새가 나올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마주해보지 못한 질문같았다. 나는 곤혹스러웠다. 어떤 대답을 해도 그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할 수 없었다. 나와 그 아이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지 함께 알아가기 시작했다.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베토벤 비창 2악장, 늦은 봄밤의 라일락향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아름다움들은 그 아이의 웃음에 대한 세상의 대답들이었다. 그날 밤에는 별이 켜졌다. 그 중 가장 밝은 것이 그 아이의 얼굴이었다. 올해의 모든 벚꽃잎을 모아야 겨우 그 아이의 색이 나올 것 같았다.      


 이제 나는 하루종일 먼지처럼 누워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바람이 불자 날아갈 것 같았다, 당신 쪽으로. 시간은 먼지가 쌓이듯 나도 모르게 흘러가다가 오늘 하루도 다 가버리고 말았다. 하루가 이렇게 어렵고 일년이 이렇게 쉬운데 이러다가 곧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세상이 끝나기 직전 찾아온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물었다.      


“너는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해? 참치김치찌개?”     

“네! 그래도 세상 마지막 날이라면 참치 김치찌개 말고 다른 걸 먹을거예요.”

“뭘 먹을건데?”     


잠시 생각하던 당신이 말했다.     


“그럼.. 찜닭!?”

“찜닭?”

“맛있잖아요.”

“무슨 찜닭?”

“그냥 빨간 찜닭 아무거나. 오빠는요?”

“나도 빨간 찜닭.”

“왜요? 매운 거 싫어하잖아요.”


“왜냐면 같이 있을 거니까.”     

 매운 걸 싫어하는 내가 대답했다. 세상의 마지막 날 빨간 찜닭을 같이 먹을 날이 올까?      


 누워있었다. 하염없이. 눈과 천장 사이로 시간이 지나갔다. 내일과 당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나는 지나가는 시간 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흩어지는 생각들.


 그렇게 너와 나는 생 하나를 온전히 살아가는 중이었다. 세상의 마지막 날이 올 때까지.

작가의 이전글 38세 이도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