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대답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질문들에 숨막히는가. ‘밥은 먹었어요?’, ‘어디 살아요?’, ‘그걸 하셨나요?’, ‘무슨 일 하세요?’, ‘어디 가시려구요?’ 침묵을 견디지 않는 우리들은 어두운 방에 들어가며 반사적으로 켜는 스위치처럼 질문을 던지지만 나처럼 대답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질문은 늘 불청객이다. 갑자기 켠 불에 눈을 비비는 아이처럼 질문을 들으면 서툴게 되묻는 것이 일상. 그러나 그 중에서도 모양새가 다른 질문들이 있다. 그런 질문을 만나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듯 나도 모르게 긴 인사를 늘어놓곤 한다.
‘본인의 성격이 어떻다고 생각하나요?’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머뭇거리다가 지금까지의 성장기, 선택의 순간들, 결심과 변화의 찰나들을 헤아리다가 결국에 타협하게 된 이야기들을 정리할 수가 없어서 대답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도 선택 혹은 충동 아닐까. 상황과 욕구를 초월하는 일관성이 사람에게 있다고 믿지 않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은 조금 낫다. 대답과 상관없이 질문 하나가 조금은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책을 읽는 것은 읽지 않는 것보다 늘 더 멋지다. 대신 대답은 곤혹스럽다. 언젠가는 자랑스러운 책을 읽었고 언젠가는 부끄러운 책을 읽었고 지금은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기 힘들다.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요?’ 이런 무해한 질문이 좋다. 내 바깥에 있는 질문. 허약한 자아를 들키지 않고도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질문이다. 날마다 저물어가는 지구에 사는 우리들도 취향만큼은 자유롭기 때문에 이런 질문에는 사심 없이 답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긴 대답을.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대답하려면 나는 너를 이해가 가능한 단어로 규정한 다음 오해없이 전달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 아무리 해도 정확할 수가 없어. 너의 윤곽이나 너의 그림자나 너가 떨어뜨린 머리카락 따위를 제외하고는 잘 설명할 수가 없어. 너는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의 합이야.
’오늘은 무엇을 했나요?‘ 떠다니는 언어들을 쳐다보다가 하루가 다 지나버렸습니다. 어떤 질문들로도 걸러지지 않는 생각들이었어요.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자주 하지만 대답할 만한 별 일은 없었습니다. 예전부터 나는 일기를 잘 쓰지 못하는 아이였어요. 그래도 하나 기억에 남는 일은, 당신이 웃으며 뛰어오는 모습이 나의 4월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만 확인한 일입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4세의 풋풋한 청년 시몽은 이제는 저물어버린 폴라에게 묻는다. 질문 하나가 삶 하나에 불을 켠다. 눈이 부시다. 눈을 감는다.
우리 밤이 어둡도록 내버려 둡시다. 불을 켜지 말아요.
오늘은 침묵보다 나은 질문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