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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Apr 20. 2024

나의 이십 대

 냉장고에 물보다 술이 많았다. 낮에는 인사보다 한숨이 많았다. 밤에는 어둠보다 그림자가 많았다. 당장 한 시간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술을 마시곤 했다. 당장 눈물을 흘릴 자신이 없어서 웃곤 했다. 나는 가만히 낙엽처럼 앉아 다가오는 겨울을 듣곤 했다. 찬 바람에 들썩이는, 행인의 발에 바스러지는, 가을의 장송곡이었다. 그때 나는 도망치는 모양새로 잠을 잤다. 들킨 모양새로 잠에서 깼다.     


 한 달을 20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 있다. 주먹만 한 창문이 있어서 2만 원이 비쌌다. 생전 처음 보는 남을 노크하면 바스러질 것 같은 나무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냉장고에 넣어둔 어머니의 반찬은 반나절이 지나면 사라져 있었다. 상표가 지워진 플라스틱 그릇에는 양념도 남아있지 않았다. 덜그럭거리는 그릇을 닦으며 나는 울지 않았다. 웃었다. 소리 내어 웃었다. 내 웃음은 나무벽들을 뚫고 모든 방에 들어가 낙엽처럼 앉았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되기 싫었다. 비 한 방울도 되고 싶지 않았다. 모래알갱이도 되고 싶지 않았다. 말단 경비원도, 공공근로자도, 공무원도, 회사원도, 귀족도, 왕족도 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가 나를 규정한다면 그 규정됨과 함께 투신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갔다. 그곳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내고 싶었다. 도서관의 사람들은 무언가 되고 싶어 했다. 그들은 토익책, 영어책, 민법책, 공무원책, 임용책을 펴 놓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아무것에도 속하지 않은 책을 펴 놓고 있었다. 그런 게 좋았다. 하지만 책을 읽지는 못했다. 책을 앞에 펴 두고 출처 없는 분노를 삭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도서관 밖에는 광인이 하루종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넘어지는 자들을 부러워했다. 움직여야 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원하는 게 있다면 넘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넘어질 곳도 없었다.     


 그 와중에 당신만큼은 낯선 종류로 예뻤다. 당분간 당신을 닮은 것들을 좋아할 것 같았다. 산등성이 위의 노을이나 소나무에 쌓이는 첫눈이나 그날 아침의 첫 번째 햇볕 같은 것.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기에 바람이 되어 당신을 스칠 수도 없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가져보지 못한 것도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매일 당신을 앓았다. 내게는 사람이 질병이었다. 그렇게 나는 고시원에서 광장처럼 아팠다.   

  

 먼 시간을 건너온 빗방울이 땅에 부딪힌다. 땅은 조금 더 검어진다. 저녁이 되자 하늘은 더 어두워졌다. 한 시간을 살아낼 자신이 없었던, 모든 책을 읽고 싶었던,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금 이곳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는 비어있는 플라스틱 반찬통이 덜그럭거린다. 도서관 밖에는 광인이 하루종일 소리를 지르고 있다. 비가 온다. 너는 웃을까. 아니면,    

 

 그때 내가 배운 한 가지는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 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미뤄두었던 모든 울음을 울어내야 한다. 빗방울이 되어버리기 전에.


 이십 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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