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여덟 번의 사랑을 하고 서른여덟 번째 이별을 한 지 얼마 안 되었다. 이제 새로운 사랑을 찾고 있었다. 놀랍게도 글쓰기 소모임에서 글을 쓰기 위해 찾은 어느 저녁 카페에서 아주 쉽게 그리고 우연하고도 명백하게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눈동자에 4월을 담고 있었다. 종종 하얗게 웃었다. 짙은 갈색 앞머리가 얼굴을 가로질렀다. 가끔 벚꽃 같은 입술에 텀블러를 갖다 대었다. 집 앞을 나온 듯 편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운동을 자주 하나 보다. 꾸미지 않은 차림에도 멋이 묻어나왔다. 공부를 하는 중인가 보다. 무언가에 열중하는 표정을 한 채 4월을 담은 눈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귀 밑으로 흘러내리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먼 곳을 보는 척 하며 몇 번 훔쳐보았다. 어디론가 통화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맑은 공기가 훑고 지나가는 관악기 같은 목소리였다. 그녀의 성대를 지나는 공기마저 그녀에게 머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고민하던 그녀가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순간 나는 이번 사랑은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나는 망설였다. 말을 걸어볼까? 그건 너무 어렵지만. 말을 건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오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너무 범죄자 같다.
‘저기요 혹시...’
자신감도 없어보이고 무엇보다 상대를 귀찮게 만들 것 같다.
‘혹시 이거 잃어버리셨나요? 날개옷..’
식상하다. 가벼워보인다.
‘저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떨지 않고 이렇게 긴 문장을 말 할 자신이 없다.
나는 망설이다가 쪽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신을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평생을 살며 당신을 그리워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나는 당신을 외운지 오래입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일이 나의 이번 생이었으므로 당신은 기다리는 일이 이번 생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운 당신은 내게 평생 그리우소서...’
까지 글을 썼을 때, 그녀는 짐을 챙겨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붙잡을까 망설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쓰던 글을 계속 써내려갔다.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쓰고 사랑을 잃었다. 이번 사랑은 피할 수 없었지만 서른아홉번째 이별은 미룰 수 있었다. 그리고 만족스러웠다. 너무 범죄자 같지도, 상대를 귀찮게 하지도, 너무 가벼워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서른여덟 번의 사랑을 하고 서른여덟 번째 이별을 한 지 얼마 안 되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사랑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