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형욱 May 20. 2024

단문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나는 당신을 꾸었다. 조곤조곤한 햇볕을 뭉쳐놓은 당신. 당신을 만지면 햇볕을 쓰다듬는 것 같아서 내 손에 새순이 돋는 줄 알았다. 새순에 나비가 가 앉는다 싶으면 이제 당신이다. 내 손과 당신 사이만큼 슬몃한 거리가 있을까. 사이를 메우는 공기가 달아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뭉텅이 진 시간들이 덤벙덤벙 밤으로 건너가버린다. 당신을 껴안을 때마다 나는 실패를 직감한다. 나는 오늘도 당신을 충분히 껴안지 못할 것이다. 이번 생을 다 써도 부족할 것이다. 늘 당신이 갈급할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밤은 숱 많은 당신 머리 가르마에 와 닿는다.


 이제 머리칼 몇 가닥을 남기고, 당신은 없다. 나는 혼자서 뭉텅이 진 시간들의 가르마를 탄다. 그 길마다 그리움뿐이다. 나의 글은 결핍의 소산. 당신이 없어서 글을 쓴다. 이제 모든 글은 당신의 것. 그러니 모든 당신이 내 것이었으면 한다. 그립다고 말해도 그리운 사람. 온 세상으로 당신을 꾼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이 봄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