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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May 19. 2024

겨울이 봄에게

 그 겨울동안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추위가 봄을 향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뻔한 온도가 늘 나를 서운하게 했다. 자주 이불을 덮었다. 밤은 금세 찾아왔다. 이미 충분한 잠을 더 끄집어 내었다. 가끔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한 날을 통째로 자기도 했다. 잘 날을 만들어 둔 것처럼 잤다. 잘 사는 걸까. 질문이 나를 옭아맬 땐 창밖을 바라보았다. 늘 밤이었다. 겨울에는 아침 다음엔 밤이 찾아온다. 겨울의 오후는 아침과 밤이 함께 겪는 졸음 같은 것. 추위가 서둘러 쫓아버린다.


 잘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잘 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떠올린 것 같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졸음은 늘 곁에 있었다. 그 겨울동안 내가 애쓴 건 잘 사는 일과 잘 자는 일을 다 해보려다가 겪는 졸음 같은 것. 시간은 내게서 겨울을 서둘러 쫓아버렸다. 나이를 먹는 건 해마다 해보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이에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나이가 나를 찾는다. 이렇게 평생 익숙하지 않은 나이를 사는 것일까. 섯부른 나이에 깜짝 놀래다가도 이만큼이나 살아남았구나, 하며 대견해하는 동안 시간은 내게서 겨울을 쫓아버렸다. 겨울에게도 나는 익숙하지 않은 계절이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 억울할 일은 없다.


 오늘은 아침이 일찍 찾아왔다. 커튼 사이로 햇볕이 스며들었다. 밝은 아침에 깜짝 놀래다가도 이만큼이나 겨울은 지나갔구나. 하며 서운해했다. 겨울도 익숙해질 만하니 새로운 계절이 나를 찾는다. 나는 새로운 계절에 새로운 기지개를 하며 익숙한 방법으로 이불을 개었다. 아침이 금세 찾아왔구나. 아직 부족한 잠을 떨쳐내었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했다. 깨끗한 햇볕이 투명한 공기중에 가득했다. 적당히 쌀쌀했고 다분히 선선했다. 이것은 오후였다. 한동안 잃어버렸던 오후. 오후는 내게 말하는 듯 했다. 잘 산다는 건 쉬운 일이다, 제 때 밥을 먹고, 적당히 게으르고, 하고싶은 일을 가끔 하면 되는 일이다. 잘 잔다는 건 쉬운 일이다. 제 때 일어나고, 이불을 개고, 기지개를 켜면 되는 일이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일대로 흘러가는 것이 잘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익숙하지 않는 세상을 익숙하게 사는 것. 그게 잘 하는 것이다. 


 퇴근길에는 노을을 보았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오후의 뒷모습. 이만큼 짙은 노랑과 섯부른 붉음 사이의 석양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썼다. 나는 길게 뻗은 볕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한 덩어리의 오후가 더해졌구나. 나에게 한 덩어리의 마음이 더해졌구나. 봄의 오후는 아침과 밤이 함께 갖는 마음 같은 것. 말랑한 햇볕이 쌀쌀한 공기중에 가득했다. 나는 아침이 밤이 되도록 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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