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심장은 막 두근대고 잠은 잘 수가 없어요.”
시간은 자정을 앞두고 있었다. 도윤은 눈을 비볐다. 쏟아지던 졸음이 금세 그쳤다. 어떻게 대답할까 잠시 생각했다. 장난스럽게 받아야 할까, 진지하게 받아야 할까. 노래 가사일까?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가 놀림감이 되면 어떻게 하나. 그것보다, 장난스럽게 받아들였다가 드물게 찾아온 로맨스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도윤은 고민했다. 로맨스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기꺼이 놀림감이 될 것인가. 예상치 못하게 훅 들어온 메시지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인가. 너무 고민해서는 안된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도윤은 핸드폰 액정을 만지작거렸다.
“커피는 입에 대지 않았어요. 심장은 막 두근대고 잠은 잘 수가 없는데.”
도윤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어느 일요일 아침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각자 책을 읽어 와 이야기하는 모임이었다. 그녀가 읽어 온 책은 ‘불편한 편의점’이었나, ‘아몬드’였나.. 도윤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아무튼 회자되는 소설이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소설을 이야기하며 그 가상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 듯 상기된 표정만이 도윤의 기억에 남을 뿐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그녀가 도윤에게 물었다.
“소설을 좋아하지 않으세요?”
도윤은 그날 자기 계발서를 들고 갔다. 비전을 선명하게 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저자의 말을 요약했다. 도윤은 동의했다. 그런 생각이, 그런 마음가짐이, 도윤을 어디론가 데려가줄 것만 같았다. 도윤은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읽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남의 이야기에 완전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도윤은 자신이 처한 난관과 고통과 슬픔과 장애가 이야기를 잡아먹어버림을 느꼈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결국 자기 걱정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싫어한다... 그 표정을 그녀는 읽었던 것일까.
“아니요, 소설도 좋아합니다. 이야기 잘 들었어요.”
도윤은 거짓말을 했다. 긍정은 옳다,라고 인간관계를 다룬 많은 책에서 읽었다. 도윤은 어색한 표정을 만들어가며 자신이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녀의 이야기에 깊이 동의하는지 표현하려 애썼다.
그로부터 2주 뒤 어느 날 자정 가까운 시간에 그녀가 느닷없이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그리고 도윤은 답을 했다. 도윤은 뒤이을 메시지를 기다렸다. 시간은 자정을 지나갔다. 도윤은 누웠다가 일어섰다가 엎드렸다가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답은 끝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