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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Aug 23. 2024

유명한 소설가에게 개인적인 약속을 제안한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약속을 잡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시도해 볼 만하다. 소설가는 약속을 남기지 않더라도 이야기 하나쯤은 건네줄 것이다. 당신은 꼭 성공하시길.  

   

 나는 오래전 그 소설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식물학자가 중국의 어느 시골을 여행했다. 그 시골에는 오래전부터 신성하게 여겨져 온 거목이 있었다. 소문을 듣고 그 나무를 조사한 식물학자는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고 비슷한 종조차도 없는 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수소문 끝에 같은 종의 나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화석이었다. 이미 멸종되었다는 주석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분명 그 소설가의 소설에서 본 것으로 기억하지만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그 소설가를 다시 되새기게 된 것은 Y 때문이다. Y는 그 소설가의 많은 소설을 읽었다. 소설가 중에서 그 소설가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책을 여러 권 가지고 있다. 사인도 꽤나 받아 두었다. 그 소설가의 소설이 Y의 일부분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그 소설가에 관심이 생겼다.


 그날은 꽤나 더웠다. 비는 내렸다가 그쳤다. 도로는 막히고 공기는 습했다. 그날 저녁 7시에 그 소설가의 낭독회가 있었다. 나는 작가의 강연회라든지 낭독회라든지 관심이 없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어디론가 이동하는 일은 아무래도 귀찮다. 더군다나 장마철 여름이 아닌가. 그러나 함께 가자는 Y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소설가에게 흥미가 생겼을뿐더러 나는 Y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체증과 더위와 땀과 사람들을 지나 낭독회가 열리는 도서관에 도착했다.


 그 소설가는 생각보다 눌변이었다. 유창하고 속도감 있는 글에 비해 그의 말은 머뭇거렸고 조심스러웠으며 에둘렀다. 그러나 그 말을 끈기 있게 듣고 나면 분명 질량 있는 생각이 소설가에서 내게로 건너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편의 소설 낭송을 마친 그 소설가에게 진행자가 물었다.


 “안부를 묻는 질문은 참 어렵죠. 나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잘 지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여쭈어 봅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그렇죠. 저는 잘 지내냐는 물음을 싫어합니다.. 잘 지내고 있으면 그것을 자랑하기도 뭣하고, 잘 못 지내고 있으면 그것을 드러내기도 뭣하고.. 가벼운 안부물음에 ‘제가 병이 났어요.’라고 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리고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달프죠. 그런 와중에 잘 지내기란 쉽지 않겠죠. 잘 지내냐는 물음에 잘 지낸다고 대답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잘 지낸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어떻게 지내냐면요, 요즘 저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매일매일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청중은 웃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며 소설가의 말을 들었다. 그때 청중은 모두 자신의 안부를 생각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달프다. 힘들고 고달픈 우리들이 모여있다. 한 소설가를 앞에 두고. 청중 속에는 내가 있었고 Y도 있었다. 매일매일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내는 우리들.

 

 진행자가 다음 소설을 낭독했다. 주인공은 직장을 다니는 여자다. 그녀는 여행 중에 즉흥적이고 직관적이며 다소 충동적인, 어떤 남자를 알게 된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보는 도중 나가버리기도 하고 프러포즈를 하겠다고 요트에서 바다로 뛰어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한국의 조르바 같은 사람. 주변사람들은 그를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다. 그를 지켜본 여자는, 자신과의 결혼을 오래 망설인 남자친구와 이별한다. 그리고 여행을 마무리한다.

 

 “여러분의 질문을 받습니다. 포스트잇에 소설가에게 남기고 싶은 질문을 남겨주세요. 선정된 질문자께 작가의 신간을 드립니다.”

 

 나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작가님의 오랜 팬입니다. 저희와 함께 식사라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대책 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듯이. 

 

 낭송이 끝나고 청중의 질문을 받는 시간. 내 질문이 적힌 포스트잇이 여럿 중에서 뽑혔다. 진행자는 장난이 섞인 말투로 내 질문을 읽었다. 소설가는 물론 거절했다. 진행자가 정리했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셔야겠습니다.”     

 

 어쨌든 나는 그 소설가의 신간을 받았다. 사인을 받기 위해 Y와 줄을 섰다. Y는 한껏 신나 하며 사진을 준비했다. 내 차례가 되자 새로 받은 책 첫 페이지를 펼치며 그 소설가에게 말했다.

 

 “아까 식사를 제안한 아무개입니다. 식사 대신.. 좋은 말 한 말씀 남겨주시겠습니까?”

 

 그 소설가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정성 들여 한 문장을 적어주었다.

 

 ‘하루하루가 쌓여 평생이 행복하시길!‘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인생이란 것은 길게 보면 어려워요. 그러나 하루만 보면 쉬워요. 평생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죠? 하루만 행복하면 돼요. 그 하루하루가 모여 평생이 된답니다. 오늘 하루 행복하면 잘한 거예요.”

 

 나는 소설가의 말을 되새기며 말했다.

 

 “작가님 덕분에 오늘 하루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소설가가 대답했다.

 

 “저도 덕분에 행복합니다.”

 

 나는 Y를 보았다. 웃고 있었다.     

 

 다시 그 소설가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식물학자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그 나무를 시골 마을의 숲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 나무는 옮겨심으니 곧게 잘 자랐다. 중국과 주변 나라에서 가로수로 많이 쓰인다. 메타세쿼이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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