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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Aug 23. 2024

커피

 나는 커피를 자주 마신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여러 음료 중 무엇을 마실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이름을 헷갈릴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카페에 들어가도 긴장할 필요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어느 시간에 어느 카페에 가도 늘 있다. 그러니까, 카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파는 곳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으면, 카페가 아니다. 다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한다. 사람들은 때로 덥고, 목마르고, 졸리고, 해야할 일이 있으니까. 


 음료를 건네받으면 갈증이 사그라들때까지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킨다. 두 번, 세 번, 머리가 띵 해질 때 까지 들이킨다. 갈증이 가신다. 그렇게 마시다 보면 순식간에 절반쯤 마셔버린다. 이제 할 일은 절반의 커피를 남겨 두는 일이다. 다 마셔버리면 왠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것 같다. 커피를 두 잔 마실 수는 없다. 그러면 잠을 잘 수가 없다. 가끔 저녁이 늦었거나 커피를 양껏 마시고 싶을 땐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다. 나도 잠은 자야하니까.


 원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셨던 것은 아니다. 한창 취업을 준비할 때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적응해가던 동료들은 누룽지 탄 맛이라고도 했고 저렴한 보약 맛 같다고도 했다. 다들 시럽을 추가해 마시곤 했다. 기억이 맞다면 나는 시럽을 한 번도 넣은 적 없다. 아무튼 그 쌉싸름한 단순함이 좋았다. 대책없이 쓰고, 단순하고, 차가운 것.     


 특히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공부하던 시절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많이 마셨다. 하루에 네다섯잔을 마신 것 같다. 책을 한 번 읽거나 졸릴 만 하면, 도서관 계단을 내려가 건물 사이를 지나가 아는 사람만 아는 쪽문을 지나 밖을 나가면 바로 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그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1200원에 팔았다. 쿠폰에 도장도 찍어주었다. 도장 10개를 받으면 한 잔의 커피가 무료였다. 계산대 앞에는 무료 커피를 원하는 여러 쿠폰들이 걸려있었다. 도서관에서 나온 누군가들이 걸어둔 쿠폰들이었다. 나도 그 중 어딘가에 내 쿠폰을 걸어두었다.      


 그렇게 커피를 받아 도서관으로 다시 걸어오며 마셨다. 도서관에 도착하기 전에 다 마셔버리는 일이 많았다. 여유를 부리고 싶을 땐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마셨다. 가끔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그러면 정말이지, 머리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각성을 안고 도서관 자리에 앉으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도 잘 읽혔다. 그런 날 밤이면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도서관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지냈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카페에 자주 간다. 이젠 계단을 내려가 건물 사이를 지나 어느 쪽문을 나서지 않아도, 주위를 둘러보면 카페 하나 쯤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게 어려우면 편의점엘 들어가도 된다. 그러니까, 시간이 흘러 나는 언제 어디서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다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하니까.     


 이제는 도서관도 다니질 않는다. 잠까지 물리쳐가며 공부할 일도 딱히 없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쿠폰에 도장을 모으지도 않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더 이상 누룽지 탄 맛도, 저렴한 보약 맛도 아니다. 그말을 하던 동료들은 다들 아저씨가 되었다. 컬럼비아산을 중심으로 블렌딩한 원두를 곱게 갈아 우려낸 에스프레소 투샷을 얼음물에 희석시킨 음료,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그것을 즐겨 마신다. 그런데, 그 때 쪽문 앞 카페에 걸어두었던 내 쿠폰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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