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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Aug 23. 2024

프로젝트성 일상

 해야할 게 있으면 일상은 단순해진다. 몸을 만들던 그때 그랬다. 수도승과 같은 일상. 한 번쯤 해볼 만하다.     

 양말과 트레이닝복을 침대 옆에 둔 채 잠들었다. 다음날 알람에 깨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양말부터 신었다.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곧바로 현관문을 열고 일단 나갔다. 창곡천을 한참 돌다 보면 떠오르는 해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쯤 겨우 정신이 들었다. 땀이 흘렀다. 피곤하고 졸렸다. 온몸에 근육통이 가득했다. 그래도 런닝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기분이 좋았다. 냉동고에서 닭가슴살을 꺼내 해동을 돌렸다. 그 틈에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했다. 땀을 깨끗이 지워낸 개운한 몸으로 냉동 야채와 닭가슴살을 볶았다. 작은 락앤락 통 두 개에 나눠담았다. 남은 건 선 채로 먹어치웠다. 올리브유에 볶은 야채와 양념하지 않은 닭가슴살이었다. 가끔 너무 물릴때면 스리라차 소스나 굴소스를 넣어먹었다. 먹는 일로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도시락은 오전 열 시와 오후 두 시에 먹었다. 도시락에는 현미밥 두 숟갈 남짓, 닭가슴살 100g, 야채볶음이 전부였다. 다 먹고 난 뒤에는 견과류 한 봉지를 먹었다. 그리고 500ml 생수통 하나를 다 마셨다. 업무 자리에서 먹으면 닭가슴살 냄새가 배니까 도시락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간혹 쌀쌀한 날에는 먹는 일이 유쾌하지 않았다. 그것 빼고는 할 만했다. 그시절은 신기하게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되어서. 먹어야 하니까 먹을 뿐이었다.      


 퇴근하면 곧바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일주일에 5일은 헬스장엘 갔다. 상체 전면, 상체 후면, 하체의 3분할을 따랐다. 들어올리는 무게가 하루하루 늘어나는 것이 좋았다. 거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무게를 들어올리는 기분도 좋았다. 트레이너와 함께 하체운동을 하는 날은 정말 힘들었다. 헬스장에 나의 기합소리가 가득했지만 나는 소리를 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같은 날들을 한 달, 두 달, 세 달을 보냈다. 근육이 자리잡혔다. 배에 살이 사라졌다. 얼굴이 홀쭉해졌다. 거울을 보고 힘을 주면 꽤 그럴듯한 모양이 나왔다. 촬영을 예약한 7월이 되자 탄수화물도 끊었다. 이틀에 한 번 단호박 조금이 전부였다.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럴 땐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촬영 이틀 전부터 물도 줄였다. 촬영날에는 수분기까지 뺀 채 피부 껍데기만 남겨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네 달 남짓을 보냈다. 아무런 잡념도 끼어들지 않았다. 운동하고, 물마시고, 도시락 만들고, 도시락 제 때 챙겨먹고, 프로틴 챙겨먹는게 일상의 전부였다. 잡다한 일들을 소거해 낸 단순함을 치루어 내느라 전념을 다했다. 그렇게 쥐어짠 모든 시간들을 몸만들기에 투자했다. 몸을 쥐어짜며 몸을 만들었다. 몸 만들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았다. 모임도 나가지 않았다.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일 이외에 모든 일들을 멀리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자세를 하고, 민망한 표정을 짓고, 기진맥진한 채 남아있는 마지막 힘을 주어가며 촬영을 끝냈다. 물을 잔뜩 마셨다. 삼겹살에 소주를 먹었다. 집에 가서 라면을 먹었다. 네 달 만에 먹는 음식들이었다. 나는 무엇을 하려던 것일까. 어찌하여 고행을 자처했을까. 수행 끝에 내가 마주한 건, 나에게서 벗어난 나. 나에게서 도망친 나.      


 몇 해가 지났다. 살이 많이 붙었다. 가끔 그 때가 생각난다. 그 시절 내 몸무게도 그렇지만 먹고, 자고, 움직이는 일이 전부였던 그 일상들이 그립다. 그렇게 살아도 만족스럽던 시간들. 일상을 챙기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했던 일상들. 해야할 게 있으면 일상은 단순해진다. 수도승과 같은 일상. 그럼에도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 나를 만나더라도, 프로젝트성 일상은 한 번쯤 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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