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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Mar 26. 2024

글쓰기는 출혈이다

글쓰기는 칼이다

 글쓰기는 출혈이다. 온 몸을 돌아다니는 생각들은 늘 버겁다. 생각들은 때로 뛰쳐나갈 틈을 찾는다. 상처를 찾은 생각들이 쏟아져 나온다. 상처는 결국 통로가 된다. 생각은 물들다가 고였다가 종내 떨어진다. 나는 그것을 종이에 뚝, 뚝, 떨어뜨린다. 종이에 글이 낭자하다. 멈출 수 없다. 글을 다 흘려보내야 한다. 도중에 그치기라도 하면 울컥, 터져나오는 생각들이 고름져 상처가 덧날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칼이다. 막고 베고 휘두르고 찌르고 물리친다. 생각들을 무찌른다. 내게 자주 생각이 쳐들어온다. 흉악하고 무도한 생각들이다. 맞설 수 있는 무기는 글뿐이다. 나는 글자를 들어 생각들을 내려친다. 미친 듯 날뛰던 생각들은 점차 잠잠해진다. 쓰러진 생각을 본 다른 생각들이 주저하며 물러난다. 생각들은 다시 내게 쳐들어올 것임을 안다. 생각은 늘 이 땅을 노린다. 나는 글로 맞설 수밖에 없다.      


 글쓰기는 기도다. 자그만 예배당에서 온몸을 꿇은 채 올리는 기도. 나는 무릎을 꿇고 손을 가지런히 모아 이마를 땅에 붙인다. 멀리서 보면 점으로 보인다. 온 몸을 구겨 만들어낸 하나의 점. 나를 가장 작게 만들어, 나를 가장 모아서 올리는 기도. 점이 기도를 올린다. 간절함으로, 처절함으로, 슬픔과 기쁨을 오가며 기도를 올린다. 글쓰기는 그때 속으로 울부짖은 기도문이다. 몸으로 만든 마침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이 기도가 가 닿을까. 글쓰기는 나를 공양하는 일. 칼로 나를 찌른다. 흐르는 피를 제물로 삼아 기도를 올린다. 나의 피가 흉악스럽지는 않을까. 나의 제물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나의 칼이 무디지는 않을까. 나의 기도가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가 닿을까. 망설이는 마음으로 올리는 공양.     


 무당은 굿을 하며 접신을 하고, 자기가 아닌 자기가 되어, 지금 없는 말을 내뱉는다. 나는 글을 쓰고, 내가 아닌 내가 되어, 여기 없는 생각을 내뱉는다. 나는 언젠가 글을 써서 예언을 했고, 소원을 이루었고, 과거를 떠나보냈고, 사랑을 했고, 사람을 얻었고, 나를 빚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의 글은 생활과 이토록 어긋나 있는 기도들. 지금 나는 어디에 무릎을 꿇고 무엇을 기도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글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슨 이유로 나는 아직까지 글을 쓰려고, 글을 지으려고, 글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글을 헤집고 있는 것일까. 헤집은 자리마다 쏟아지는 글자들. 낭자한 생각들. 어딘가로 향하는 기도. 오늘. 여기. 모든 예언이 어긋나는 밤에. 마침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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