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의 글쓰기
넘어지는 것들에게서 나는 향에 대해
바싹 마른 빨래 냄새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아침과 닮은 향기가 있다. 갓 내린 커피냄새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정오의 햇볕과 닮은 향기가 있다. 비오기 전 흙과 풀이 뒤엉킨 냄새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저녁과 닮은 향기가 있다.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향수를 만들고 싶다. 나무과 흙과 햇볕과 커피를 섞고 거기에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향성을 한 방울 넣어 제멋대로인 용기에 담아내고 싶다.
지독하게 게으르다. 게으르다는 말보다 게으르다. 어제는 세시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벗어났다. 평일에는 여덟시쯤 되면 침대로 숨는다. 서 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주된 나의 일과다. 자는 일이 가장 좋다. 졸음이 오지 않아도 애써 잠을 찾아가는 일이 잦다.
그럼에도 일요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려 한다. 일요일 아침이 진짜 아침이다. 서서히 밝아오는 볕이 좋다. 아무런 할 일이 없는 하루의 시작이 좋다. 애써 일찍 일어나 목격하는 공백의 하루가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 좋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는 무언가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일부러 뭐라도 한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강의를 듣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을 거부하겠다. 나는 무언가를 해버리겠다. 일요일 아침은 그러니까 반항이다.
오늘은 글을 쓴다. 커피를 마신다. 폭삭거리는 키보드를 두들겨 문장을 만든다. 먼지처럼 일어나는 생각을 다듬는다. 세상과 아무 상관도 없는 글을 써 아무도 읽지 않게 한다. 일주일동안 세상에 시달렸던 언어들을 쓸어낸다. 혹은 낮잠을 재운다. 이 글은 일주일을 보내고 난 뒤 낮잠에 빠진 내 언어의 잠꼬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지만 무슨 말이든 할 터이다.
“서양의 춤은 중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라면 동양의 춤은 중력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입니다.”
오래 생각하고 있는 문장이다. 나는 어쩌다가 동양의 춤을 추는 중이라 그렇게 시간을, 운명을, 관계를, 중력을 받아들여 곱게 넘어지는 일을 오래도록 행하고 있다. 사는 건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가만히 넘어지는 일이다. 넘어지는 것들에게는 어떤 냄새가 날까. 나무향, 꽃향, 비누향, 시트러스향.. 모르겠다. 왠지 어머니의 살냄새가 날 것 같다. 평생을 천천히 중력에 스러지는 삶을 산 어머니의 춤 같은.
지금은 일요일 아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그렇지만 나는 무언가를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향을 떠올리고 오래 생각하는 문장을 떠올리고 어머니를 떠올리고 오랫동안 넘어지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글로 남겼다. 이런 거 아무것도 아니지만 오늘 아침도 잘 넘어졌다. 잘했다. 좋은 아침이다. 좋은 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