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없는 성공은 공허한 것일 뿐
뉴욕에 갔을 때 일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랐다. 옥상에 가니 널찍한 전망대가 있었다. 햇빛은 도시 전체를 감싸고 하늘은 멀리 지평선에 맞닿아 있었다. 뉴욕 시내 곳곳에는 활기가 넘쳤다. 망원경에 동전을 넣으니 먼 곳까지 가까이 보였다. 인생도 이렇게 멀리 잘 보이면 좋으련만.
잠시 뒤, 나는 망원경 속 세계에 갇히는 걸 느꼈다. 좌우로 상하로 조금씩만 움직일 뿐인 렌즈는 어느 순간부터 제약이 되었다. 망원경은 철제로 된 기둥 끝에 달려 있었다. 다리가 바닥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장방형의 옥상, 그 사면(四面) 중 오직 한 면으로 내 시야는 고정되고 말았다. 운명은 나를 그 모서리로 보냈다. 해리포터를 그리핀도르로 이끈 마법의 모자처럼.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것들이 시작되었다. 돈을 투입해야만 작동되는 것도 못마땅했다. 고작 몇 분간만 볼 수 있는 망원경 속 세상은 더 오래 관찰하고 싶었던 내게, 잠시 있다 사라지는 오아시스의 신기루처럼 아쉬웠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망원경에 비친 세상을 보고 있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었고 좁아진 시계(視界)에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앞에 선 잿빛 마천루밖에 없었다. 렌즈에 난 상처가 그날따라 더 불편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반대편 망원경에는 너도나도 몰려들고 있었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은 전망이 좋다는 망원경 앞으로 모여들었다.
저 망원경은 정말 특별한 걸까. 저 앞에 서려면 내가 먼저 특별해져야 했다. 일도 잘해야 하고, 골프도 잘 칠 수 있어야 했다. 술도 마실 줄 알고, 아부도 잘 해야 했다. 결국은 인맥이 좋아야 된다는 소문은 정설처럼 굳어졌다. 성공한 사회인이라고 할 때, 떠오르게 되는 어떤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에 부합되어야 그 특별한 망원경 앞에 설 자격이 생겼다.
직장은 전망대를 닮았다. 우리는 직장이 배정한 곳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망원경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기 마련이었다. 회사는 나에게 망원경을 쓸 기회를 주었고, 나는 그걸 닦고 또 닦아가며 사용했다. 멀리 있는 것들을 가깝게 지켜보면서 세밀한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가보지 않고도 어떤 장면을 내 앞에 가져다 놓는 것은 행운이었다. 상상력만 풍부하다면 미래를 달려가 짐작할 수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벅찬 경험을 했다는 것은 내가 회사를 다니며 누린 가장 큰 행복이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내 노력과 아이디어를 지불해야 직장은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시하곤 했다. 흔히들 직장에서는 직원들끼리 경쟁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직장과 직원이 경쟁하는 것이었다. 직장은 직장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각자의 성장을 목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골인을 위해 내달리곤 했다. 그런 게 나에게는 직장생활이었다.
나는 성공에 목마른 이들이 허세로 시키는 값 비싼 한 끼 식사를 볼 때면 부끄럽다. 화이트칼라가 먹는 밥은 왜 저렇게 고급스러울까. 도시락을 싸서 연구실에서 점심을 먹는 어느 노학자의 이야기, 밀려드는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매일매일 김밥 한 줄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어느 의사의 고달픈 삶, 오늘도 헌밥을 물에 말아 먹을 어머니의 점심을 생각하면, 내가 간직해야 할 가치와 그 가치가 있어야 할 곳이 아주 명확해진다. 성장이 없는 성공은 공허한 것일 뿐. 성공의 길을 내달렸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리더들의 불안한 눈빛은, 전망이 좋다는 저 망원경 앞에 서기 위해 우리가 섣불리 규격화해버린 성공의 공식을 되짚어보게 한다.
내가 사는 이 사회를 렌즈로 보면 참 별나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보다 오열을 맞춘 군대식 행렬이 유독 눈에 많이 띄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만 뛰어다니는 학생들도 많이 보인다. 풍요롭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압축성장 속에 많은 것이 획일화되었다. 한국인에게 표준화는 성공으로 향하는 지름길 같은 것이었다. 선대가 찾아낸 성공의 공식을 사회 전체가 학습했고, 이것이 후대로 이어졌다. 시대정신이 바뀌어도 그 공식들은 그대로 쓰였다. 철 지난 이념논쟁과 과도한 스펙 경쟁, 부와 지위를 성공이라 여기는 비뚤어진 환상은, 규격화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표준화하고 평준화시킨 결과이기도 했다.
내가 사는 도시는 유독 휘어진 길이 많았다. 힘깨나 쓰는 자가 앞장서면, 사람들이 몰려와 뒷북을 치며 따랐다. 요란한 북소리는 길가에 놔뒀으면 좋았을 들꽃을 길 한가운데로 심는 일을 북돋곤 했다. 길가에 있을 때 참 곱던 그 꽃이 길 안으로 들어와 모든 이의 발길을 막아섰다. 그러면 역사는 걸음을 멈추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길을 찾아 수레바퀴를 돌렸다.
길이 꼬불꼬불해진 건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Essay Club/ 이종화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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