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의 편지

글은, 삶이란 진흙 속에서 흙 한 덩이 떼어내 빚어내는 그릇과도 같다.

by 이종화

무기력해질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보는 글이 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유고이다. 할아버지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집에서만 지내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삶을 정리하면서 그 글을 썼을 것이고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조용히 새벽녘의 별이 되고 나서 우린 그걸 읽어보게 되었다.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말뜻을 나는 그때 알았다. 서간에는 호흡이 가빴을 할아버지의 손 떨림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편지에서 자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맨 끝에 나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영문과 교수로 봉직하며 삼남매를 키웠다. 전쟁 중에 감옥에 억울하게 끌려가 매를 맞아 폐결핵을 앓았고, 그 뒤로는 늘 가쁘게 숨을 쉬었다. 50대 이후 지방신문에 수필을 발표했고, 학보사 편집국장이란 보직을 겸하며 더 많은 글을 썼다. 정년퇴임을 한 뒤 할아버지의 작품활동은 왕성해졌다. 70대 중반, 그때까지 쓴 원고를 모아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발간했고, 그걸 읽으면서 중학생이었던 나도 수필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할아버지 책을 옆에 놓고 나는 습작을 거듭했다.
할아버지는 잔잔한 글을 좋아했다. 산보다 야트막한 언덕을 지향했다. 산맥을 따라 한참을 달려가던 산봉우리들이 일거에 부채처럼 펼쳐지며 드넓은 평원으로 뒤바뀌는 장엄한 광경보다는, 아침햇살을 머금은 시냇물이 하류로 흐르듯 부드러운 문장을 썼다. 그 시냇물은 낙엽도 만나고, 물레방아에도 빙글 올라탔다가, 우연히 만난 뭉툭한 바위가 좋아지면 그냥 그 틈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글의 심상(心想)을 형성했다. 그러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면, 그 자리에 미련 없이 마침표를 찍는 걸로 할아버지는 수필 한 편을 탈고했다. 강아지 ‘찐찐’과 함께 나섰던 불광천변(佛光川邊)의 새벽산책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쌓이게 되면 특별해지는 것이 바로 수필이란 걸, 나도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내가 빌려드린 조창인의 『가시고기』를 다 읽고, 할아버지는 나를 불러 이런 말을 했다.
“이 글 참 좋구나. 클라이맥스가 없어서 좋아.”
할아버지의 신교(身敎)는 또 있었다.
1993년, 당시 『수필공원』이란 문예지에서 만든 문학상 중에 ‘현대수필문학대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상의 여섯 번째 수상자였는데, 1977년 제정된 이래 십오 년간 겨우 다섯 명만 받은 권위 있는 상이라고 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런 상을 받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처음, 노년의 외로운 창가에 비친 저녁 햇살이 퍽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윽함이란 말을 이해한 것도 그때였다.
기쁜 내색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멋쩍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 상의 첫 번째 수상자였던 피천득 선생과 점심을 먹으면서 그분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연장자였던 피천득 선생이 축하 인사를 먼저 건네자, 할아버지는 “저는 수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썼는데, 사람들이 그걸 ‘수필’이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거였다. 할아버지가 수필이 뭔지 몰랐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수필을 써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 말을 심장에 새기고 산다. 나를 잊어버리되,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마음의 균형. 거기 이르는 찰나, 수필가는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마음 상태에 도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유고엔 지금 내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지략 같은 건 들어있지 않다. 두툼한 그 편지에는 게으르지 말고, 성실하게 살 것이며, 교통사고 조심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사촌 간에 우애하라는 말이 그리운 필체로 남아있다. 종교를 지나치게 신봉하여 일상에서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하고, 술은 자제하고 담배는 피우지 말라고도 했다. 그 글에서 일생을 회고하며 할아버지는 자랑이라고 볼 수 있는 말을 딱 한 차례 한다. 나는 평생 부지런했노라고, 단 하루도 게으르지 않았다고.
나는 이걸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르침으로 간직하고 산다. 작가에게 특히 수필가에게 글은, 삶이란 진흙 속에서 흙 한 덩이 떼어내 빚어내는 그릇과도 같다. 삶이 혼탁하면 그릇의 질도 그렇게 된다. 이따금 사람들은 나에게 왜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지, 골프는 왜 치지 않는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 묻는다. 그 답은 간단하다.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에서 밥값 이상을 해 왔고, 그러면서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공부도 계속하며 산다. 언뜻 다르다고 인식되는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나만의 집을 짓기 위해서, 모든 걸 취하고 사는 건 내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그렇게 일생 정성 들여 가꾼 진흙의 고운 질을 지키고, 더 찰지고 더 깊게 만드는 게 지금 내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스스로를 굽히는 선택을 한다면, 그로 인한 부끄러움이 나의 삶에 여과 없이 투영될 것이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 그 글이 가진 힘은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있다. 모든 끝자락엔 무형의 벽이 있는 것 같다. 혜민 스님이 말한 것처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인생의 여정이 계속되는 한,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마련. 할아버지도 죽음의 옷자락이 저만치 펄럭이는 걸 보며, 그전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지막 순간 하였을 것이다. 먼 훗날,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면 남기는 말 한마디 쓰고 싶다. 나의 삶이 가장 진실되어서 삶 자체가 한 편의 수필이 되길 꿈꾸어본다. 이건 어릴 적부터 간절했던 꿈이었다. 그리고 평생 부지런하게 살았다고 나도 후손들에게 말하고 싶다.
오늘도 직장에서 세상의 벽을 만나고 왔다. 울적한 마음에 할아버지의 편지를 또 꺼내 본다. 내가 처음 만났던 문학의 원형(原型). 그 정겨운 언덕을 가만가만 더듬어본다.

Essay Club/ 이종화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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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2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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