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람은 자신의 꽃을 피우려 하기 때문이다.
주인에겐 꿈이 있었다. 땅을 사던 날, 그는 목청을 높였다. 꽃밭은 이렇게 가꿀 거라고. 일꾼들은 딴전을 피웠다.
“우리가 알아서 할 건데….”주인은 생각지도 못한 벽에 부딪혔다. 그날 밤, 그는 힘이 세 보이는 일꾼 몇을 불러 술판을 벌였다. 거나하게 취한 일꾼들은 우리 주인이 최고라고 건들거렸다. 다음 날, 그들은 완장을 차고 반장이 되었다. 반장들은 손에서 호미를 놓았다. 밭을 갈라 서로 영역을 정하고 일꾼들을 감독했다. 일꾼들은 밭을 갈았고, 반장은 일꾼들을 갈았다. 평평했던 대지는 가파른 계단으로 변해갔다.
주인은 밭에 나오지 않았다. 반장을 시켜 일꾼들에게 뜻을 전달했다. 아주 많은 지시가 반장의 입에서 매일 쏟아졌다. 일꾼들은 반장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다. 어느 날 주인이 밭에 행차했다. 반장들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하는 수 없이 주인은 믿는 척,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이 났다. 주인집에 큰불이 났다. 어째서 불이 난 건지 아무도 몰랐다. 주인은 결국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잿더미로 변한 집터에서 반장들은 악어처럼 울었다. 꽃밭이 타지 않아 다행이라고들 했다.
동이 트자 주인의 어린 아들이 꽃밭을 물려받았다. 일단이 새 주인을 에워쌌다. 반장들이었다. 겁에 질린 어린 주인은 반장 몇에 의지했다. 반장들은 자주 모여서 밀담을 나눴다. ‘세력’이란 말이 언뜻 들렸다. 그리고 한참 뒤, 꽃밭엔 한바탕 소요가 있었다. 패자들은 대거 쫓겨났고, 이긴 반장들은 일꾼 중 제 사람을 추려 완장을 채웠다.
조선이 무너졌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검붉은 밤이 찾아왔다. 외마디 비명이 칠흑의 북을 밤새 찢었다. 일제를 향한 폐행(嬖幸)이 시작됐고, 완장을 찬 친일은 용일(用日)로 둔갑했다. 용일로 해석될 수도 있을 흔적을 남겨 친일을 덮었다. 독립운동의 가면을 쓴 친일도 있었을 것이다. 다 해어진 한복에는 왜색이 배었다. 벚꽃을 사쿠라로 개명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란 팻말을 꽃밭에 내걸었다. 무궁화는 지고 사쿠라가 꽃밭을 덮었다.
광복이 왔지만, 태극기가 펄럭이는 꽃밭에는 또다시 임금이 즉위했다. 왕의 이름은 ‘공복(公僕)’이었다. 새 반장이 등장했다. 오 년마다 왕이 바뀌는 나라, 그 왕을 추대한 절반이 나머지 절반을 적대시하는 나라가 되었다. 반장은 직접 왕이 되기도 하고 허수아비를 내세워 얼굴을 감추기도 했다. 왕은 정치업자들이 바친 푹신한 털방석에 앉아 자신을 받드는 그 절반만을 위해 피리를 불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꽃밭엔 두 종류의 꽃만 심겼다. 왕이 좋아하는 꽃과 돈이 되는 꽃. 왕이 바뀔 때마다 일꾼들은 꽃밭을 갈아엎는 시늉을 했다.
꽃 한 송이. 그걸 보는 게 죽은 주인의 꿈이었을 게다. 일꾼들은 주인 말을 듣지 않았고, 주인은 자신의 꽃을 피우려 반장들을 뽑았다. 권력은 늘 그렇게 만들어지지만,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꽃을 위해 일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사람은 자신의 꽃을 피우려 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곳이, 꽃밭이었다.
Essay Club/ 이종화 作
에세이문학 2024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