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는 우리 집에 살았던 강아지다. 어린 시절 일곱하고도 반 년을 함께 지냈다. 제 어미가 낳은 새끼들 중 가장 인물이 못나서 우리 집 차지가 된, 우리 만남은 분명 운명이었다. 엄마 떨어져 집에 온 첫날, 세상을 버릴 듯 구슬피 울던 강아지는 어머니가 준 우유 한 잔을 허겁지겁 핥아먹더니 곤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녀석에게 ‘베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벤이라고 하려다 소녀여서 베니라고 불렀다.
짝짝이 진 눈에는 자고나면 늘 눈곱이 말라붙었다.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엄마를 잊고 마당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날로 건강히 자랐다.
일러준 적도 없는데, 베니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볼 일을 보는 법이 없었다. 꽃밭 흙더미에 올라타서 거기 심어둔 키 작은 꽃이며 싹이 파릇한 상추와 놀면서 일을 마쳤다. 마당의 빗자루는 한번도 개똥 치우는 데 쓰이지 않았다. 못된 친구들이 골목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으면 어느새 멀리서 달려와 아이들을 쫓아버렸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떠나면 며칠이고 물만 마시며 현관 앞만 지켰다는 미담이 줄을 이었다. 아래층 아주머니가 음식을 주며 아무리 달래보아도 으르렁댈 뿐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다. 한번은 외가에 맡기고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의 일을 못 잊고 외할아버지만 오시면 춤을 췄다. 뒷발로 서서 만세를 부르며 게처럼 걸었다. 오냐, 오냐. 겨우 베니를 진정시키고 안으로 들어서면 베니는 할아버지 지팡이에 코를 들이대고 마냥 행복해했다.
보통 개는 아니었지만 뚜렷한 혈통은 없었다. 반려견이라 불리는 요새 도심의 개들처럼 호사를 누릴 처지도 아니었다. 발바리라고 하지만 그 축에나 낄 수 있을지. 남은 밥을 먹고 솜털 푹신한 담요 한 장이면 거뜬히 겨울을 났다. 가끔 주는 불고기 국물에 식은밥 한 덩이면 귀를 내리고 행복해했고, 설이면 떡국 국물을 홀짝홀짝 마시며 나이를 먹었다. 할아버지가 사온 호두과자 한두 알을 입에 물려주면 요기조기 굴리며 놀았다. 귀히 태어나진 않았지만, 녀석은 따뜻했다. 함박눈이 추억처럼 내리면 함께 마당을 뛰어다니며 눈사람을 만들었다. 등굣길에 집을 나서면 대문 앞까지 나를 배웅하던 베니는 재빨리 이층 난간으로 올라가 나를 향해 짖어댔다.
베니는 우리 집에 살며 세 번 새끼를 낳았다. 한번에 네댓 마리씩. 천으로 개집을 가려주면 집에 들어가 밤새 벽을 긁었다. 아침이면 평화가 찾아왔다. 새 생명들이 거룩하게 안겨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젖을 먹었다. 작은 혀가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며 베니는 나를 바라보았다. 개집 앞에 가만 쪼그려 앉아 있었지만 싫은 내색도 하지 않았다. 역시 우리 베니는 다르다며 엄마에게 자랑도 했다.
곧 어미 곁을 떠날 새끼들이었지만, 나는 모두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내가 늦잠을 자면 어머니는 베니의 아기들을 내 방으로 들여보냈다. 걸음마를 막 뗀 강아지들이 짧은 꼬리를 흔들며 얼굴을 핥는 걸 잠결에 느낄 때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새끼들이 거실에 실수를 하면 현관 밖에서 집안을 구경하던 베니가 잠시 올라와 그걸 먹고 내려갔다. 나의 소년기는 강아지를 빼고 생각할 수 없지만, 베니만큼 추억 많은 개는 없었다.
새끼들이 모두 새 주인을 찾아떠나면 베니는 제 집 안에 틀어박혔다. 이가 나고도 어미젖을 계속 찾는 새끼들을 무는 시늉을 하며 야단치던 베니는 허전한 듯, 몸을 둥글게 말아 어린 것들이 찾던 제 가슴팍에 주둥이를 묻었다.
베니는 아버지를 잘 따랐다. 밤이면 혼자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 옆에 얌전히 앉아, 함께 별을 보았다. 아버지가 거기 망연히 서서 무얼 생각했을지 문득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 모습이 어제처럼 생생히 오늘을 밝힌다.
그 후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면서 베니는 우리 집을 떠나게 되었다. 새 주인을 찾던 우리에게 일층에 살던 아저씨가 선뜻 나섰다. 농장으로 보낸다는 거였다. 나는 베니와 아파트로 갈 생각이었지만 어른들의 생각은 달랐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베니가 떠나고 없었다. 어머니는 울먹였다. 베니를 꼭 안고 차에 태웠는데 아무 소리 없이 바르르 떨며 떠났다 했다. 우린 헤어졌다. 나는 방에 틀어박혀 몸을 둥글게 말고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었다. 농장은 먼 곳에 있었다. 모두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 해 뒤 아버지도 떠났다. 농장보다 더 먼 곳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남은 가족들은 그 마을을 완전히 떠났다. 골목마다 어린 추억의 무게를 이길 수 없었다. 우린 새 마을에 둥지를 틀고 새로 시작했다.
한참이 흘렀다. 옛 마을을 찾았지만 거기에는 다른 마을이 있었다. 좁더라도 마당 한 뼘씩은 있던 단독 주택들이 사라지고 다세대 주택들이 솟아 있었다. 우리 집을 허문 자리에 빌라 하나가 무덤처럼 서 있었다. 마당도 난간도 사라졌다. 빼곡히 벽돌을 올린 낯선 집 앞에서 힘겨울 줄 알았던 발걸음은 의외로 쉽게 떼어졌다.
베니가 그렇게 떠나고 다시 개를 기르지 못했다. 못난 외모 탓에 어느 집의 선택도 받지 못했던 그 개가 정작 어느 동화 속의 명견보다 훌륭했다고 느낄 땐, 행운이 삶을 찾는 방식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길을 잃고 순수의 가치가 무력해 보이는 일상에서 나 또한 변해가는 듯하면, 베니의 순하디순한 눈망울이 자꾸 떠오른다.
베니가 갔다는 농장처럼 이젠 닿을 수 없이 멀리멀리 흘러가 버린 소년시절은 잃어버린 동화가 되어 오늘도 가슴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