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처럼 살지 않기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운동화를 신고 런데이 앱을 켰다. 4주 1일차 훈련.
지난겨울에도 런데이 30일 운동에 도전하긴 했다. 아들 학원 데리러 갔을 때 시간이 남으면 학원 주변 도로를 달렸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지만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땅이 얼어 있어 미끄러질까 봐 조심해야 했지만. 추운 날에는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장갑을 꼈다. 멋진 러너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달리고 있다는 그 자체가 좋아서 그날의 훈련을 마무리했다. 중간에 포기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싫기도 했고.
비가 막 그친 뒤라 도로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한산한 도로를 달리는 게 더 좋았다. 엉성한 폼을 보여주기가 아직은 민망해서, 내가 느끼기에도 이 자세가 맞는지 아직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런데이에서 경쾌한 남자 코치의 소리가 들린다. 허리는 곧게 세우고 눈은 30미터 앞을 보며 달려야 한다고. 어제는 부상의 위험도 알려줬다. 무리해서 달리다 보면 다칠 수도 있으니 매일 달리는 것보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하는 게 낫다고.
35분간 다섯 번의 달리는 구간이 나온다. 2분 30초 달리는 걸 다섯 번. 세 번까지는 달리만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부슬부슬 비를 맞으며 뛰는 기분이 괜찮았다.
네 번째 구간에서는 1분 달리고 나니 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뒤에서 내 다리를 잡아 끄는 느낌. 몇 분 달렸다고 이렇게 벌써 숨이 찰 일이냐. 속으로 탓하며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1분 남았습니다. 힘내세요!"
아마 이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겠지.
책에서 읽은 문장이 생각났다. 숨이 헉헉거리고, 도저히 달릴 수 없을 것 같을 때가 체력이 자라는 때라고.
그래. 바로 이거야. 지금 나는 자라고 있어.
달리기를 멈춘 후에도 계속 숨이 찼다.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어졌다. 운동화는 다 젖었고, 몸은 끈적거렸다. 8주 코스의 절반을 향해 간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힘이 났다.
얼마 전 읽은 책 <필스터츠의 내면 강화>에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지금 행동하는 거라 한다. 확신이 없는 데 어떤 마음으로 계속한다는 거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뭔가 비전이 있고 미래가 펼쳐져야 힘을 낼 거 아닌가 하고.
확신이 없다는 건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결과에 집착하다 보면 과정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은 이 글이 나중에 어떤 결과가 있을지 예측하지 못한다. 글이 모여 책이 되고 그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 그냥 쓰는 마음이 계속 쓰는 사람으로 만든다.
어제 수업에서 멍게 이야기를 했다. 멍게는 유충일 때는 올챙이처럼 헤엄친다고 한다. 뇌가 있다는 뜻이다. 움직이는 생물은 모두 뇌가 있다. 뇌는 움직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다 자란 멍게는 바위에 붙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편안한 장소에 머물러 나아갈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뇌를 없애버리며 성장을 멈춘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래에 불투명해도 확신이 없어도 마음이 가는 방향에 따라 길을 나서야 한다. 그 길 한가운데 어떤 고난과 고통이 닥쳐도 헤쳐나갈 힘이 있다. 힘든 일을 겪고 하나씩 해결해 나갈 때 성장을 한다.
9시에 알람이 울린다. 책상 앞으로 가서 글을 쓰라는 알람이다. 나에겐 제일 조용한 시간, 노트북을 펴고 자판 위에 손을 얹는다.
11시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밖으로 나아가라는 신호다. 운동화 신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다. 책을 더 읽고 싶어도 다시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고 싶은 마음 나지만 일단 밖으로 나간다.
오늘은 체육 문화센터 snpe 바른 자세 운동하러 가는 날이다. 굳었던 목과 어깨를 시원하게 풀어 줘야지. 그리고 어제 달렸던 길을 걸으며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을 마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