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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껍질 Sep 20. 2024

연휴의 마지막날, 세 명의 노인 이야기

인생이란 무엇일까?

 

“오늘 세 명의 노인을 만났네. 좋은 경험이다.”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은 나이 듦에 대해, 노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하루였다.


먼저, 우리 할머니 이야기가 있다. 명절 연휴 마지막날은 할머니와 식사를 마치고 요양원에 데려다 드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최근에 요양원에 가시게 되었다. 시골집에서 차 타고 오 분 거리, 가까운 곳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우주에 있는 듯 멀게 느껴졌다.


보름 정도를 요양원에서 보내다가 명절을 맞아 집에 온 할머니는 하룻밤에도 서너 번을 깨어 잠이 안 온다고 보챘다. 오른발, 왼발을 동동거리며 멈추지 않고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또 멍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꾸자꾸 아이가 되어 더 귀여워지는 할머니는 사랑스러웠지만, 그건 일 년에 두어 번 만나는 손녀딸의 입장이었다. "노인과 아이의 차이는 아이는 아무리 짜증을 내고, 칭얼거려도 귀엽지만 노인은 그렇지 않다는 거야." 밤에 일어나서 자꾸 거실을 돌아다니는 할머니를 보며, 내뱉은 엄마의 말에서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할머니의 치매가 시작되고 꽤 시간이 흘렀고, 할머니의 작은 몸에 품고 있는 우울과 치매에 대한 관리를 더 이상 할아버지에게 맡길 수 없었다. 수간호사처럼 꼼꼼히 돌보다가도 슬픈 마음에 아내에게 버럭 화를 내버리고 말면,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할아버지의 눈치를 봤다. 할머니의 병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곁에 24시간 붙어서 건강을 관리해 주고,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엄마도 외삼촌들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동안의 할머니를 모시고 천안과 일산을 오간 경험에 비추어보면 더 그랬다. 어린이집처럼 주중 낮 시간에 다니던 돌봄 센터에서 하루종일 할머니를 맡아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었다.


요양원으로 가야 할 시간. 자식들과 손주들이 왔다며 함빡 웃음을 짓다가도, 왜 다들 여기 모여 있냐며 앞전의 일들을 잊어버리는 할머니지만, 지금 이 차를 타면 할아버지와 떨어져 집이 아닌 낯선 곳에 있어야 한다는 걸 아는 듯했다. 가지 않겠다고 여기 있겠다는 할머니를 보며 외삼촌도 엄마도 할아버지도 모두 슬픈 얼굴이 됐다. 결국 할아버지도 같이 간다며 달래서 차를 타고, 올라가서 약을 먹고 와야 한다며 할머니를 센터 안으로 들여보냈다. 돌아오면서, 요양원에 보낼 떡을 만들 방앗간을 찾기 위해 이모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만큼 작고 귀여운 이모할머니도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슬픈 얼굴이 됐다.


그다음은 친가에 들려, 할아버지를 뵙고 할아버지의 동생의 아내, 그러니까 나의 아빠의 작은엄마의 장례식에 가야 했다.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아팠고,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날 아침에 들었다. 바로 천안에 가서 연휴를 마무리하려던 계획을 바꿔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들른 할아버지 댁에서 가장 많이 변해 있는 건 우리 할아버지였다. 아이가 크는 속도보다 노인이 나이 드는 속도가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력이 부쩍 쇠한 것이 느껴지고, 자꾸 미간을 찡그리며 기침을 하셨다. 눈이 침침해지셔서, 사람들을 실루엣으로 알아보고 대화하시는 듯했다. 그 모습이 어색하고, 할아버지의 물건들로 가득 찬 공간이 비좁아서 불편하게 앉아있다가 나왔는데, 좀 더 살갑게 해 드릴 걸 그랬나 매번 하는 후회를 이번에도 조금 했다.


사형제와 여동생들, 가정마다 네다섯씩 되는 자녀들, 그리고 또 그들의 아이들로 가득 차서 깨끔발을 들고 왔다 갔다 했던 집안에, 올해 명절에는 할아버지와 손님 한 분만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손주들이 크면서 명절은 점점 더 간소해졌다. 시골집이 아닌 큰아빠댁에서 제사를 지내고, 반나절 수다를 떨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가볍고 홀가분한 명절이 훨씬 좋지만, 엄청난 귀성길과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소식을 나눴던 것은 어린 시절 잊지 못할 귀한 경험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돌이켜보면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할아버지는 계속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문 앞, 티비 맞은편은 항상 할아버지의 자리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는데, 부쩍 나이가 들어버리신 듯한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장례식장은 할아버지댁 근처였고, 건강하셨던 분이라 예상치 못한 이별에 당황한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슬픈 소식은 처음에 접했을 때는 그냥 사실로 존재하다가, 장례식장의 문을 열고 고인과 가까운 이들을 만나면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 눈가가 빨개진 엄마와 안경을 벗었다 끼었다 하며 대화를 나누는 아빠를 보면서 죽음이 뭔지, 곁에 있던 누군가가 사라진다는 게 뭔지 나지막한 질문이 들었다.


연명치료, 의사들의 파업과 같은 단어들이 오가고, 다들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대화하고 근황을 나눴다. 먼 가족을 만나는 일은 주로 결혼식과 장례식이라,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촌 언니의 결혼식 이야기도 종종 소환이 되었다. 같은 며느리 었고, 추석 연휴 전날에 돌아가셨던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도 나왔다. 사용하시던 도끼빗, 물건들이 그대로 자리에 있는데 고인만 여기 없다는 말에는, 그 말로 그려지는 풍경이 너무 쓸쓸하고 평범해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여정이 끝난 낮 3시, 천안집으로 가는 차에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찌뿌둥했다. 약간 몸살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에너지가 없다고 하니, 엄마는 그럴만하다고 했다. 연휴 막바지에 갑자기 몰아친 삶과 나이 듦, 죽음에 대한 진한 경험이 살아가며 어느 순간에 두어 번 다시 떠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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