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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도 시간도 쌓이는 곳, 묵호

묵호에서 발견한 것들

by 귤껍질

“내가 좋아하는 걸 다 섞어보세요. 그럼 남과 다른 게 나와요.”


내가 좋아하는 모임 계정을 운영하시는 분이 해준 말이다. 이 말이 머릿속을 맴돌던 차에, 묵호 여행을 갔다. 취향이 쌓여서 새로움을 만들고, 그 새로운 시도들이 모여서 마을을 바꾸고 있었다. 여행의 여정과 소외를 기록해 본다.


여행 가방

퇴근 후 저녁 기차로 출발해서 바로 호텔에 체크인하고, 다음날에는 필름 투어 후 자유 여행을 하는 일정이었다. 캐러멜 호텔에서 묵고, 숙소와 연계된 '111호 프로젝트'에서 진행하는 투어에 참여했다. 투어를 진행해 주신 분을 따라 묵호를 경험하면서, ‘좋아하는 걸 섞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캐러멜 호텔
귀여운 소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 풀고 회를 배달해 먹고, 영화 한 편을 봤다. 다음날 아침 9시경에 준비를 마치고, 묵호항 쪽으로 아침 산책을 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3명의 여행자에게 낡고 단조로운 묵호의 거리 풍경은 많이 낯설었다. 오래된 집들과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간판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들을 지나서, 선착장까지 돌아봤다.

오래된 건물
묵호항


아침 산책의 끝머리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말랑할 것 같은 동해수제찹쌀떡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가게 오픈 시간에 맞춰, 옹심이로 속을 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11시에는 숙소 근처의 작가님의 공간으로 갔다. 공간의 이름은 ‘111호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한 배경을 소개해 주시고, 애정을 가득 담은 묵호의 역사 소개가 이어졌다. LP와 사진이 좋아서 111호 작업실에 자리를 잡고, 동해에서 자란 경험을 기반으로 투어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함께 묵호를 돌아다니면서, 옛날 묵호의 모습과 역사들 그리고 건물마다 담긴 이야기들을 설명해 주셨다. 일제강점기 즈음 어업 종사 인원이 급증했다가 서서히 줄어들어 지금은 2천7백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발전이 멈췄다가 KTX가 묵호역까지 오게 되면서, 최근에 찻집, 책방 등과 같은 명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일본식 집
묵호의 시그니처! 도깨비방망이 모양 다리


스폿마다 사진도 찍고 잠시 서서 거리와 건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품샵에서 반려돌, 조개 모빌 등을 홀린 듯이 구경했다. 느린 우체통에서 편지도 쓰고, 마지막에는 소프트콘으로 마무리했다. 다시 돌아간 111호 작업실은 무인으로 열어두어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공간에 비집고 들어가서 촬영하신 사진으로 만든 편지지와 책갈피, 짱구 스티커와 과자까지 가득 선물 받고 투어가 마무리됐다.

묵호 풍경
소품샵
너무 귀여웠던 강아지!


사진, LP, 동해, 묵호 등 작가님의 취향이 가득 반영된 투어 덕분에 묵호는 더욱 입체적이고 낭만적인 도시가 됐다.


끝나고 오늘 길에, 함께한 분의 ”우리도 좋아하는 것들 모아서 공간 하나 운영할까요? “라는 말에, 내가 좋아하는 걸 모으면 어떤 공간이 만들어질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111호 내부
벽면 가득한 문구들
귀여운 소품들이 가득!


필름투어에 이어서 P들의 무계획 여행은 찻집 도야하우스, 책방 잔잔하게, 그리고 틈틈이 사 먹은 간식들로 알차게 채워졌다. 투어의 여운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회사 불평을 하고, 냅다 여행의 주제곡인 ‘알 수 없는 인생’을 부르기도 했다.

도야하우스


계획이 없다는 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여행 내내 어떤 제안이든지 서로 “어쩜 그렇게 똑똑해요!” 라며 “좋아요”를 연발했다. 한 분이 우리의 여행은 “싫어요”가 없는 현실판 네버랜드라고 했다.




묵호에 애정을 가지고 정착하는 사장님들이 동네를 젊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지역의 발전은 그 지역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앞으로도 묵호라는 지역에 매력을 느끼고 여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음에 방문했을 때는 지나간 시간만큼 지역이 더 다채로워지면 괜히 나도 뿌듯할 것 같다. 다음에는 독도까지 가보는 일정으로 다시 와볼 예정이다.


집들 사이로 본 바다
마지막 날 본 저녁 하늘
등대 곁에 떨어진 돌멩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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