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머무름
세비아에서 그라나다까지 센딩 투어를 하며 들린 사라, 사라라는 마을과의 짧은 만남은 마음에 오래 남을 질문을 남겨줬다.
삶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안정감이라고 생각한다. 자발적이고 의도적으로 변화를 선택하지 않는 한, 오늘 출근한 회사에 내일도 출근할 수 있고, 힘들면 쉴 나의 집이 있고, 변치 않는 소속인 가족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기본적인 안정감이 충족된다. 기본적이라고 했지만, 그걸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지는 곳이 있었다.
아침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배신감을 느끼며 샌딩투어의 차에 탔다. 올리브 나무가 펼쳐진 농지와 산, 나무들을 지나 어느 정도 멀리 왔다 싶을 때 즘 흰색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사라가 얼핏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 국가를 거쳐 스페인에 정착하신 것 같은 다소 퉁명스러운 기사 아저씨는 마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사라의 사람들은 태어나면 모두 마을에 있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식을 올린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녀들의 출입이 활발한 마을 공동 양로원에 들어가 살고, 죽어서는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힌다. 일하는 시간은 시작도 늦고 점심시간도 한나절이라 도대체 언제 일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적다고 했다.
흰 벽과 붉은빛 벽돌, 그리고 초록 숲으로 둘러싸여 도시를 이루는 색조차 단조로운 사라라는 마을. 마을 사람들의 삶은 이 마을처럼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마을 주위 농지에서 난 음식을 자급자족하고, 정기적으로 마을의 축제를 열고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고 자란 서울 풍경과는 너무나도 다른 생활환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국에서는 대학진학과 취업과 내 집마련, 노후자금 준비 등 아등바등 얻어야 하는 삶의 안정감이 태어날 때부터 선물처럼 주어지는 샘이었다. 그럼 사라의 사람들은 불안하지 않을까?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상품성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경험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될까? 하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 답은 사라의 주민이 아니니 알 수 없었다. 실은 기사 아저씨의 말이 모두 맞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으로나마 간접 체험하면서 원하는 삶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