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머무름
가우디의 작품을 잔뜩 보고 느낀 건, 이 사람은 혼자인 걸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건축물들, 특히 구엘 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자연물에서 신의 은총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온통 곡선으로 자연을 닮았지만, 집착적일 만큼 섬세한 건축물들은 예술 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건축의 기준을 주변 건축가들에게 두지 않고, 신에게 둔 건축가 가우디. 그런 외롭고 단단한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궁금했다.
가우디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항상 쭈그려 앉은 자세로 바닥의 곤충들, 돌, 나무조각, 풀 등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사랑했던 여자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교통사고 후 거지인 줄 알고 승차 거부와 치료 거부를 당한 뒤 죽어갔던 삶은 어쩌면 기구해 보인다. 하지만 어릴 적 마음껏 뛰어놀지 못한 소외감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부당한 깊은 외로움의 경험들이 혼자만의 길을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의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그 시간들이 그가 혼자인 시간을 견디고 남과 상관없이 창의적인 결정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귀족 가문의 기부금에 비례하게 번쩍거리는 그림과 스테인 글라스로 가득한 유럽의 성당들과 달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창문만을 활용해 내부를 빛으로 가득 채웠다. 모든 군더더기를 제외하고 빛에만 집중한 건축은 밖에서도 놀라웠지만 안에서 보니 하루 종일 앉아서 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가우디가 왜 천재인지 알 것 같았다.
구엘 공원의 빨래터 가는 길의 기둥들은 인위적인 손길이 하나도 닿지 않은 자연물처럼 느껴진다. 아슬아슬하지만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은 숙련된 곡예사의 공연을 보는 것 같다. 타일 조각들로 만든 의자는 작업 내내 인부들을 수차례 앉아보게 하고 가장 편안한 각도를 찾았다고 한다. 의자 아래, 시장이 있던 공간은 눈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기둥의 높이를 조정해 원근법의 효과를 완화했다. 예상하지 못한 곳까지 하나하나 신경 쓴 집착과 몰입이 대단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미친 창의성만큼 놀라운 점은, 그가 건축가였다는 것이다.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긴 인고의 시간과 엄청난 협업, 리더십이 필요하다. 심지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자신의 세대에는 절대 완성할 수 없는 설계도라는 걸 알고, 수 세대에 걸친 프로젝트로 공표한 뒤 건축을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은 대중들에게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반대와 질문들이 다른 건축가에 비해 몇 배는 많았을 것이다. 그런 의심과 의문들을 뚫고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며 세상에 유일한 건축물을 만들어낸 고집을 나도 가지고 싶어졌다.
거장이라는 칭호를 어깨에 이고 가장 남루한 옷차림으로 집도 없이 수도원에서 생활한 가우디,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가우디의 흔적은 인생의 소명을 가지고 묵묵히 나아가는 삶을 보여줬다.